2026.10.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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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를 중심으로 초등학교 1, 2학년의 하교 시간을 현행 오후 1~2시에서 오후 3시로 연장하고 정규 수업 시수를 확대하는 방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8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추진하다 아동 발달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던 논란이 또다시 정국의 화두로 부상한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 과정은 유치원 과정의 연장으로 이에 준하는 아동의 성장·발달을 고려하는 교육과정으로 구성된 것이 현실이다.

 

​언론과 정책 당국은 이를 ‘학부모의 경력 단절 예방’과 ‘아동의 성장·발달적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대립시키고 있다. 그동안 양육 부담 완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외치는 학부모·산업계의 절박함, 그리고 억지(과도한) 수업으로 아이들을 책상에 묶어두는 것은 ‘국가 차원의 아동학대’이자 돌봄 부담을 학교로 전가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교직 사회의 분노가 거세게 충돌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가치 충돌 앞에서 우리가 내려야 할 가장 현명하고 본질적인 결단은 무엇인가? 교육의 프레임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올바른 답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차가운 수치와 뜨거운 현장에서의 데이터가 말하는 역설(paradox)이다. ​수업 시수 연장을 주장하는 측의 핵심 근거는 OECD 통계다.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초등 1, 2학년의 연간 수업시간은 581시간으로, OECD 평균인 815시간에 비해 약 234시간(28.7%)이나 적다. 1950년대 의무교육 도입 당시 교실과 교원 부족으로 형성된 ‘단축형 수업’이 저출생·맞벌이 시대가 된 지금까지 이어져, 이른바 ‘초등 1학년 잔혹사’라 불리는 부모의 경력 단절과 사교육 뺑뺑이를 유발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전국 2만 9천여 명의 초등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실태 조사를 분석해 보면 서늘한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65.5%(조사 기관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아이들이 “3시까지 수업을 하면 너무 힘들고 지칠 것 같다”고 호소했으며, 오직 3.7%만이 “괜찮다”고 응답했다는 보도다. 담임교사의 97.7% 역시 신체·정서 발달에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밝혀 반대했다.

 

교육 선진국이자 대표적인 인권 국가인 ​프랑스는 오후 4시 30분, 영어권의 거대 양대 국가인 미국과 영국은 오후 3시 이후에 하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놀이와 쉬는 시간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높고 학급당 학생 수가 현저히 적다. 이들 국가는 발달 단계에 맞는 각종 유아 프로그램이 촘촘하게 짜여 있다. 따라서 쥐어짜기 방식의 획일적인 교과 수업을 늘리는 것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자, 국가가 사회적 돌봄 비용을 학교 현장에 손쉽게 전가하려는 구조적 방임과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논쟁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학교 수업 시간 연장’과 ‘학부모의 돌봄 지원’을 동일선상에 놓고 “아동의 자유인가? 부모의 경력인가?”라는 이분법적 선택에 가두어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처럼 관점을 아이에게 주도권을 둘 것인가, 학부모에게 둘 것인가를 다툴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아이의 인간다운 삶과 가정의 안정을 위해 어떠한 입체적 환경을 제공할 것인가?”로 질문을 고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분법적 논쟁에 빠지기보다는 가장 현명하고 획기적인 결단으로 ‘정규 수업 시간의 연장’에는 명확히 반대하되, 그 대안으로 ‘지자체-지역사회 통합형 아동 공간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현실을 고려하여 실용적으로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7~8세 아동의 뇌 발달 특성상 40분 단위의 정규 수업을 6~7교시까지 연장하는 것은 엄청난 정서적 과부하와 신체적 통제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후 1시에 학교 밖으로 아이들을 내몰아 학원 차를 갈아타면서 길거리 위에서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현 체제 역시도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한국 초등 교육 체제는 다음과 같은 구조 개혁의 단행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정규 교육과정과 돌봄 거점의 철저한 기능 분리다. 학교 교사에게 ‘돌봄 노동’을 전가하여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후 1시 이후의 시간은 교실 내 교과 수업이 아닌, 전문 거점형 마을 돌봄 체계나 학교 내 독립된 ‘자유 놀이 및 아동 쉼터’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지자체 예산과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아이들이 책상이 아닌 온돌바닥과 흙과 모래가 깔린 마당에서 스스로 놀고 쉬며 관계를 맺는 자율 선택형 놀이 시간으로 오후 3~4시(또는 그 이상) 까지를 채워야 한다.

 

둘째, ​유연근무제 혁신을 통해 학부모를 아이 곁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이 돌봄 공백을 메운 핵심 열쇠는 학교에 아이를 오래 가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초등 입학기 부모 시차출퇴근제’와 ‘육아기 단축근무의 권리’였다. 아동의 하교 시간에 맞춰 부모가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기업에 강도 높은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만이 부모의 경력 단절을 막는 진정한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학교 공간을 유연화하고 사교육 의존성을 탈피하는 것이다. 학교 공간을 정형화된 네모반듯한 교실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아이들이 원하는 시간에 도서관, 체육관, 다목적실 등에서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아동 중심 공간’으로 확대 내지 개조해야 한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길은 아이들을 공부로 내몰아 3시까지 앉혀두는 것이 아니라, 질 높은 예체능 및 융합 체험 프로그램을 학교와 지역사회가 무료로 흡수하는 데 있다.

 

​스위스의 저명한 발달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아이들은 능동적인 탐구자이며, 그들의 성장은 외부의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의 주도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어른들의 편의나 노동 생산성의 논리로 아이들의 하루를 규격화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교육이 아니라 행정 편의주의일 뿐이다. 아이들의 건강과 자유, 그리고 학부모의 직장 생활과 경력 유지는 결코 상충하는 적대적 가치가 아니다. 국가가 든든한 사회적 돌봄망을 구축하고 일·가정 양립 문화를 확립한다면 이 두 가치는 완벽하게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교육은 아이를 학교에 ‘오래 가두어두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나는 터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가을, 우리가 논쟁의 결론으로 내려야 할 확고한 결단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자유로운 발걸음, 놀 권리 등을 복합적으로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가보지 않은 길은 곧 또 하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이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은, 아이들의 삶을 전적으로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믿는다. 학교는 진정으로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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