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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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국가’의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교육적 방안

​대한민국은 참 대단한 나라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K-팝, K-푸드, K-콘텐츠 등 K-컬쳐 의 본고장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초고령화 사회’ 즉 ‘장수국가’이기도 하다. 유엔인구기금(UNFPA) 등의 인구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세계 최상위권인 83.6세를 기록하고 있다. ‘100세 시대’가 그저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화려한 숫자 뒤편에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가슴 시린 잔혹사가 숨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압도적 1위’라는 비극적인 왕관을 수년째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더 소름 돋는 것은, 이 비극이 인생의 종착역에 선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질병관리청과 교육부의 청소년 건강 행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소년 자살률’ 역시 거의 십 년을 넘게 세계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인생의 시작점에 선 아이들은 “힘들어 못 살겠다”며 교실 창문 밖을 서성이거나 실제로 갈수록 ‘학교 밖 청소년’이 되어 가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른들은 “지쳐서 못 살겠다”며 차가운 방구석에서 한숨을 쉬며 ‘방콕’하며 산다. 시작과 끝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이 기막힌 구조, 과연 이대로 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초저출산의 여파를 크게 걱정하며 ‘국가 소멸’을 언급하지만, 그보다 앞서 실존하는 노인과 청소년의 생존을 더 크게 걱정해야 할 판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장수국가’를 넘어, 모두가 웃으며 나이 들 수 있는 ‘복지 선진국’이자 ‘행복한 노인을 위한 국가’로 대전환해야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을 조금 더 상세화하면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39.7%로 OECD(평균 14.7%) 국가 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무거운 숙제를 풀기 위해, 청소년과 노인이 서로를 구원하는 복지의 방향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아이의 지루함과 노인의 외로움이 만나는 ‘세대 통합형 복지’의 실현이다. ​우리는 흔히 노인 복지라고 하면 ‘경로당에 안마의자 놔드리기’, ‘독거노인 반찬 배달’, ‘노인들에게 겨울나기 연탄 배달하기’ 등과 같은 수혜적이고 격리된 정책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노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보호 대상’으로만 묶어두는 복지는 결코 행복한 노년을 보장하지 못한다. 노인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빈곤도 있지만, 내가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존재적 상실감과 외로움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의 획기적인 복지 실험인 ‘세대 통합형 요양원(Intergenerational Care)’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활성화된 이 시스템은 노인 요양원과 공립 어린이집(또는 방과 후 돌봄 교실)을 한 건물에 합쳐놓은 형태이다. 그 운영의 실태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

오전 10시, 요양원 로비에는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80대 할아버지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고 동화책을 편다. 그 앞에는 눈을 반짝이는 6세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할아버지는 인생의 지혜를 담아 실감 나게 구연동화를 읽어주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는다. ​오후 3시, 마당의 텃밭에서 할머니들이 상추 심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자연을 배우고, 노인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보며 엔돌핀을 충전한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세대 통합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은 우울증 발생률이 일반 요양원 노인에 비해 40% 이상 감소했으며, 인지 능력 저하(치매) 속도도 현저히 늦춰졌다고 발표한다. ​이것이 바로 돈 한 푼 더 배부하는 것보다 강한 ‘관계의 복지’라 할 것이다. 아이들의 통통 튀는 생명력이 노인의 외로움을 치료하고, 노인의 넉넉한 품이 학업 스트레스에 지친 청소년들의 정서를 보듬는 영혼의 상부상조인 셈이다.

 

둘째, ‘격대(隔代) 교육’의 부활로 할아버지·할머니가 최고의 미래형 교사가 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첫째의 제안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제 우리 교육계는 이 제안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최근 학교 현장은 교권 추락과 돌봄 공백, 그리고 청소년들의 정서적 고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답만 요구하는 경쟁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숨이 막힌다. 이 거친 교실을 구출할 실질적인 구원 체계로 바로 우리 사회의 ‘은퇴한 고령 인력’을 임명해 충분히 활용하자는 것이다. 최근 지역 교육청에 따라 퇴직 교원을 다각도로 활용하는 ‘교육 잇기’ 운동도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맡아 키우며 삶의 지혜와 인성을 가르치던 ‘격대(隔代) 교육’의 전통이 있었다. 부모는 생업으로 바쁘고 엄하게 야단치기 쉽지만, 조부모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오랜 삶의 연륜으로 아이의 거친 언저리를 부드럽게 감싸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다음의 사례에 주목해 보자. ​학교로 출근하는 ‘인생 마스터’들의 ‘교육 잇기’ 실제 모습이다. 은퇴한 전직 교사, 공무원, 장인, 혹은 평생 성실하게 가정을 일궈온 평범한 어르신들을 학교의 ‘인성·돌봄 멘토’로 대거 채용하는 방안이다.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이나 중학교 자유학기제 시간에 어르신들이 들어오신다. 이는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바둑을 두며 참을성을 가르치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며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같이 전통 음식을 만들며 밥상머리 예절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정책 연구에서도 조부모 세대와의 지속적인 교류가 청소년의 정서적 안정감과 자아존중감을 높여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 바 있다. 노인에게는 사회적 기여를 통한 ‘자부심과 경제적 소득(노인 일자리)’을, 청소년에게는 조건 없는 지지와 ‘정서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획기적인 교육-복지 모델인 것이다.

 

셋째, 미미한 기초연금 말고 가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복지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를 오직 ‘돈’으로만 해결하려 들면, 예산은 늘 부족하고 세대 갈등만 깊어질 것이다. 청년 세대는 “우리가 번 돈으로 노인들만 먹여 살린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노인 세대는 “우리가 피땀 흘려 이 나라를 키웠는데 겨우 이것 주냐”며 서운해한다. 이런 물질적 복지의 한계를 깨는 것이 바로 ‘생산적·가치 중심적 복지’라 할 것이다.

 

​정부는 노인들에게 단순히 방역 일자리나 가로수 잡초 제거, 쓰레기 줍기 같은 기계적인 일자리만 제공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궤적과 지혜를 사회적으로 자산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교육부의 돌봄 국가책임제(늘봄학교)와 전면 연계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할머니들이 만들어주는 따뜻한 집밥 같은 급식을 학교에서 먹고, 할아버지들의 따뜻한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하는 보육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대한민국의 사교육비와 돌봄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노인이 행복해야 아이가 내일을 꿈꿀 수 있다. ​노인 자살률 1위와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양단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연결고리는, 결국 우리 사회가 ‘인간을 소모품으로 대하고 있다’는 거대한 조난 신호라 할 수 있다. 어려서는 시험 치는 기계로, 젊어서는 일하는 기계로 살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 처분되듯이 외로움 속에 방치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영국처럼 우리도 청소년과 노인들을 중심에 두고 정책을 펼치는 한국형 ‘외로움부’를 신설해야 할 판이다.

 

이제 우리는 경로당의 벽을 허물고 학교의 문을 활짝 열어 두 세대를 만나게 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고 청소년들이 생의 온기를 느끼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어르신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재감을 견지할 수 있는 나라, 이런 격대 소통의 따뜻한 공동체가 살아 숨 쉴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복지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청소년과 노인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험한 인생의 파도를 상호 의지하며 넘는, 품격 있고 행복한 교육을 펼치는 대한민국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소망해 본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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