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교육신문]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학교가 늘면서 폐교 활용이 새로운 교육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광역시교육청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5개 학교가 문을 닫았고, 내년에도 3개 학교가 휴·폐교 절차를 밟을 예정이어서 3년 동안 모두 8개 학교가 사라지는 흐름이다. 학교가 사라진 자리에 도서관과 미래교육시설이 들어서는 사례가 있는 반면, 소유권과 예산, 주민 요구,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역할이 엇갈리면서 활용방안을 찾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현행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은 폐교재산을 교육용시설과 사회복지시설,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하도록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에서 규정하는 교육용시설에는 도서관과 박물관, 청소년수련시설 등이 포함된다. 교육감은 일정한 공익적 용도로 폐교재산을 활용하려는 경우 법이 정한 범위에서 대부나 매각을 할 수 있다. 결국 폐교 활용의 법적 통로 자체가 부족하다기보다, 어떤 기능을 담을지와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운영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더 큰 과제인 셈이다.
옛 덕천여중, 폐교 한 곳에 ‘미래교육’과 ‘공공도서관’을 담다
부산에서 대표적인 폐교 활용 사례로 꼽히는 곳이 북구 옛 덕천여자중학교다.
덕천여중은 2022년 3월 폐교했다. 같은 해 부산시교육청과 북구는 폐교 건물을 학생과 주민을 위한 복합시설로 활용하기로 협약했다. 기존 교사동은 미래교육시설로, 강당은 공공도서관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시교육청은 도서관 부지와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북구는 도서관 조성 비용을 부담하는 역할분담 구조를 만들었다. 당시 부산에서 시교육청과 기초자치단체가 폐교를 공동 활용해 학생 교육과 주민 문화 인프라를 함께 조성하는 첫 사례로 소개됐다.
이 가운데 교사동은 2025년 1월 부산광역시교육청 SW·AI교육거점센터로 문을 열었다. 센터는 약 7,225㎡ 규모로 XR, 메타버스, 생성형 AI, 로봇, 데이터사이언스 등 체험·교육 공간을 갖추고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디지털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 현재도 학생 디지털교육, 교원 연수, 학부모 디지털 아카데미 등이 지속되고 있다.
강당동을 활용한 덕천도서관도 2025년 개관했다. 부산시는 덕천도서관을 지역 문화의 거점 도서관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현재 북구 주민이 이용하는 정식 공공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 덕천여중 사례의 의미는 단순히 “폐교를 잘 고쳐 썼다”는 데 있지 않다.
시교육청은 학생을 위한 미래교육 기능을 유지하고, 기초자치단체는 주민을 위한 문화·독서 기능을 맡는 방식으로 하나의 폐교를 복합 활용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폐교의 활용 목적이 하나일 필요는 없고, 기관 간 역할을 명확히 나누면 교육과 지역문화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폐교라도 해법은 다르다…주원초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
반면 부산진구 개금동의 주원초등학교는 폐교 활용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주원초는 학령인구 감소로 2025년 3월 폐교했다. 시교육청은 도심에 위치한 입지 여건 등을 고려해 당초 자체 교육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부산시와 부산진구, 주민 등 지역사회에서는 지역 발전을 위해 매각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시교육청은 실무위원회와 폐교재산활용위원회 등의 검토를 거쳐 2025년 8월 매각 방침을 확정했다.
활용 아이디어도 하나가 아니었다.
폐교 활용 논의 과정에서는 공원, 문화·교육시설, 임시주차장 등이 거론됐고, 인접한 부산백병원 측의 의료시설 및 의대·간호대 교육시설 확장 가능성도 관심을 받았다.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의료 인프라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병원 확장에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특정 기관에 부지를 직접 넘기는 방식은 특혜 논란과 법적 절차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시교육청은 결국 일반입찰을 통한 매각 방침을 택했고, 공유재산심의회와 부산시의회 심의 등을 거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매각까지 시간이 걸리는 동안 운동장을 임시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시설 조성비의 매몰 가능성과 관리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잠정 보류됐다.
주원초를 단순한 ‘폐교 활용 실패 사례’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이 사례는 오히려 하나의 폐교를 두고
교육시설로 남길 것인가, 의료·지역발전 자산으로 활용할 것인가, 주민 편의시설로 사용할 것인가
라는 서로 다른 공익적 요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행정 현장에서 체감한 폐교 문제…건물보다 관계가 더 복잡하다
기자가 과거 부산교육행정 현장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며 접했던 학교 유휴재산 문제도 비슷했다.
학교 건물과 토지의 소유·관리 주체가 서로 다르거나, 시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생각하는 활용 목적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사업 추진은 쉽게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여기에 해당 지역 주민의 요구와 지방의회의 의견, 예산 부담 문제까지 겹치면 하나의 활용안을 확정하기까지 상당한 조정이 필요했다.
폐교 문제는 건물 하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행정에서는 먼저
- 토지와 건물의 소유주체
- 공유재산의 성격
- 학교용지 및 도시계획상 용도
- 매각·대부 가능 여부
- 리모델링 비용
- 향후 운영비 부담
- 주민 수요
- 지방의회의 예산·재산 심의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결국 폐교 활용은 시설정책이면서 동시에 재산정책, 교육정책, 도시정책, 지역정치와 주민협의가 만나는 복합 행정영역이다.
‘폐교 후 활용’에서 ‘폐교 전 설계’로 바꿔야
폐교 활용이 장기간 표류하는 것을 줄이려면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학교가 문을 닫은 뒤 활용방안을 찾는 방식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학교 통폐합 검토 → 지역 수요조사 → 활용방안 협의 → 재산·예산 구조 정리 → 폐교와 동시에 전환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폐교가 예상되는 단계부터 시교육청과 기초자치단체, 지방의회,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첫 단계에서는 개발사업부터 논의하기보다 토지·건물의 소유관계와 행정재산 여부, 법적 용도부터 투명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후 지역별 수요에 따라 도서관, SW·AI교육센터, 평생교육시설, 청소년 공간, 복지시설, 문화예술 공간 등 활용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현행 폐교활용법 역시 교육·복지·문화·체육 등 다양한 공익적 활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폐교는 ‘남는 학교’가 아니라 지역의 다음 공간
옛 덕천여중 사례는 폐교가 지역의 미래교육과 문화공간으로 다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주원초 사례는 지역에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합의되지 않을 경우 폐교 활용이 얼마나 복잡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가 이어질수록 학교 통폐합과 폐교 문제는 특정 지역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교육행정의 상시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폐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학교 건물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도서관이 될 수 있고, SW·AI교육센터가 될 수도 있으며, 평생교육시설이나 청소년·복지 공간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학교가 문을 닫은 뒤 활용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폐교를 논의하는 단계부터 그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 폐교 정책의 기준도 이제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에서
‘지역의 교육자산을 어떻게 다시 활용할 것인가’
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기자 프로필

서정필 대한민국교육신문 선임기자
전 부산광역시교육청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했으며,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공공정책을 공부했다.
현재 교육정책·교육복지·지역교육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취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