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고유 명절 한가위 즉, 추석(秋夕)이 가까워지면서 어린 시절 어른들의 덕담이 귓가에 되살아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는 언뜻 들으면 참 이상한 덕담처럼 들린다. 왜냐면 세상은 인간의 욕망이 끊임없이 ‘더(More)’를 외치기 때문이다. 곧,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자녀는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 한다. 그런데 유독 한가위만큼은 “더도 말고 덜도 말라”고 한다. 이는 아마도 이미 충분한 풍요를 알고(自足),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우리 조상들의 절묘한 지혜가 아닌가 판단된다.
필자는 이 말이 오늘날 우리 교육에도 꼭 필요한 화두라고 믿는다. 우리의 교육정책을 보면 늘 ‘새로움’이 앞선다. 새 교육과정, 새로운 평가 방법, 새로운 학교 모델, 새로운 교육사업 등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물론 “변화만이 미래의 유일한 상수(常數)”라 주장하던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처럼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교육에서 새로운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님을 잠시 숙고(熟考)해 보고자 한다.
수많은 교육정책 가운데 학생과 학부모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더 이상 특별한 정책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 그런 정책이야말로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육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책 하나를 꼽는다면 필자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들고자 한다.
잠시 그 역사를 돌아보자. 고교 무상교육은 2019년 2학기 고3을 시작으로 시행됐다. 2020년 고2·고3으로 확대됐고, 2021년부터는 전 학년으로 확대됐다. 교육부는 당시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교과서비 등을 지원하여 학생 1인당 연간 약 160만 원의 가계 학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는 ‘당연히 (비싼) 돈을 내고 다니는 학교’였다. 자녀가 고등학생이 되면 부모는 수업료와 교과서 대금, 학교운영지원비 등을 계산해야 했다. 자녀가 둘 이상이면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너무나 당연하게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여기에 정책의 역설적인 성공이 있다. 정말 좋은 교육정책은 박수를 오래 받는 정책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그것을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정책이라 여겨진다. 바로 고교 무상교육이 그렇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고등학교 교육에 필요한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용 도서 구입비를 무상으로 하고 그 비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육의 기본적인 비용을 개인의 능력에만 맡기지 않고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학비 일부를 아껴주는 복지정책, 즉 교육 시혜 조치로 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교육의 출발선에 놓인 경제적 장벽 하나를 국가가 치워버린 것이다. 물론 무상교육이 모든 교육격차를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학교 밖에는 여전히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한다.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5,000억 원으로 전년(2024년 29조 2,000억) 보다 5.7% 감소했지만,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체 학생 기준 45만 8,000원이었다. 사교육 참여 학생만 놓고 보면 월평균 60만 4,000원이었다.
그러므로 고교 무상교육을 두고 “교육격차가 해결됐다”고 말한다면 이는 지나친 낙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격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이유로 무상교육의 의미까지 축소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국가는 적어도 “가정의 형편 때문에 기본적인 고등학교 교육의 문 앞에서 주저앉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라는 정책의 선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교육신문> [월요논단](2026.9.27.)에 “교육의 국가 완전 책임제가 실현된다면”을 기고한 바 있다.
필자는 이 한마디가 교육복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더 얹어주는 일만이 아니다. 때로는 아이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돌멩이를 하나 치워주는 일이어야 한다. 무상교육은 바로 그런 정책이라 믿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정책의 효과가 숫자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부모에게 “고등학교 학비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된다”는 말은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자녀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육무류(敎育無類)”의 안도감, 다른 아이와 비교해 기본적인 교육권만큼은 뒤처지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정감은 통계표만으로는 쉽게 측정하기 어렵다.
교육의 복지는 때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교육정책의 성공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책이 얼마나 화려했는가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현수막을 걸었는가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연구학교와 시범학교를 만들었는가도 아니다. 아이와 학부모의 삶에서 불필요한 걱정을 얼마나 없애주었는가, 이것이 오히려 중요한 기준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의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교육정책에도 한가위의 덕담을 건네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교 무상교육만 같아라.” 여기서 내포하는 ‘지금처럼’이라는 말은 개선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제도는 정권이나 교육정책의 유행에 따라 흔들지 말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면서 오래도록 지속하자는 뜻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육에도 유난히 ‘새것 콤플렉스’가 강하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야 하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하고, 전임자가 하던 일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정책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제도 배울 수 있었고 오늘도 배울 수 있으며 내일도 같은 교육권을 보장받는 것, 이것이 교육에서 가장 위대한 혁신은 때로 지속성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농부는 추석에 익은 벼를 보며 매일 논을 갈아엎지 않는다. 잘 자라는 벼라면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주고, 물을 조절하고, 병충해를 살피며 수확을 기다린다. 교육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올해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며 우리 교육도 그런 넉넉함을 배웠으면 한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전에 이미 보장된 것을 지켜주고,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기 전에 제대로 작동하는 제도를 살피며, ‘더 빨리’보다 ‘더 오래’를 생각하는 교육, 바로 이것 말이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