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탐독했을 법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형주성이 함락되고 영웅 관우(關羽)가 최후를 맞이하는 가슴 아픈 대목이 있다. 형주성은 교통의 요충지이고 위, 촉, 오 세 나라에게 전략상 무척이나 중요한 곳인지라 제갈량(諸葛亮)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곳을 가장 믿을 수 있는 관우에게 맡기고 다른 전선(戰線)으로 향한다.
한편 관우는 신중한 사람인지라 봉수대(烽燧臺)를 촘촘히 세우고 방비를 철통같이 했고 그래서 오나라의 장수 여몽이 아무리 성을 공격하고자 해도 바늘 끝만큼의 빈틈도 보이질 않았다. 드디어 여몽은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누었다. 그때 수하의 육손이라는 장수가 그에게 계책을 건의하는데 계책인 즉 여몽은 이름난 장수인지라 적이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므로 형식상 지휘관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로 교체하여 적을 방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육손의 계책이 실행되자 과연 형주성의 방비가 느슨해졌고 이때를 틈타 육손은 천신만고 끝에 첫 번째 봉수대를 점령했다. 봉수대라는 것은 당시의 통신시설로서 전선(戰線)으로부터 도성까지 단숨에 위급함을 알릴 수 있는 장치였다. 최초의 봉수대에서 연기가 오르면 다음과 그 다음으로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산꼭대기들을 통하여 적의 침략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봉수대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자 그 다음 그 다음은 변변한 싸움 한 번 없이 무너졌고 적이 본성에 이를 때까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형주성은 함락되고 관우는 최후를 맞이했고 의형(義兄) 관우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장비(張飛)는 무리하게 그의 복수를 서두르다 수하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고 유비의 촉나라도 국운이 기울고 만다.
어느 질병이 무섭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성경에도 나병(癩病)은 무서운 질병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또 하나 요즘 인류의 형편이 나아지면서 과다한 영양 섭취로 인류가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당뇨라는 병은 특히 무섭다. 그런데 나병과 당뇨의 공통점은 말초 혈관의 괴사로 인해 감각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시력을 잃게 되고 손가락 발가락 등이 감각을 잃게 되어 상처가 나면 좀처럼 아물지를 않고 급기야 썩어가거나 떨어져 나가도 아픔을 모르게 된다.
언젠가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갔다가 자칫 큰 일이 날 뻔한 적이 있다. 물컵을 들어 물을 마시려는데 별반 느낌이 없어 한 모금을 마셨다. 재빨리 뱉어 내지 않고 삼켰다면 식도가 화상을 입었을 만큼 뜨거웠다. 혀와 입천장만 데어 2,3일 고생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알고 보니 컵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뜨거움이 전달되지 않았고 손끝 감각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어디 말초신경이 인체에서만 중요하겠는가. 사회도 국가도 그렇다. 사회가 병들고 국가가 신음하게 되는 것은 말초신경이 되는 개인이 감각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도덕적 윤리적 지각도 잃어가고 개인주의와 편의주의 쾌락주의만 팽배해져가는 사회, 국가는 병든 사회 병든 국가가 되어간다. 나쁜 지도자를 탓하면서도 나쁜 지도자를 뽑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선악을 분별할 감각이 무딘 탓이다.
종교 저술가인 E.G. 화이트는 그녀의 저서들에서 수많은 곳에 죄와 나병을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다. “죄는 치명적인 문둥병처럼 세상에 널리 퍼졌다(부조와 선지자 82).” 그녀가 어째서 죄를 나병에 비유했는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세상과 대치하고 있는 최일선(最一線)의 감각(죄책감)이 무너지면 죄는 야금야금 파고 들 것이고 전체가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육손이 그랬던 것처럼 배금주의(拜金主義) 는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을 무뎌지게 하고 심상(尋常)히 여기게 한다. 건강한 개인이나 사회,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감각이 깨어 있어야 한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