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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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의 건강한 행복

가면, 어느 모습이 나일까?


어렸을 적부터 친근한 영화 제목들이 있다. 슈퍼맨, 헐크, 그리고 스파이더맨. 하지만 정작 이런 제목의 영화들을 즐겨 보지는 않았는데, 독특한 의상을 입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왠지 남성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상하리만치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스파이더맨4를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히어로 캐릭터의 영화가 단순히 영웅담만 보여줄 거라는 생각은 나의 오해였던 것이다. 화려한 액션 뒤에 숨겨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도 충분히 공감하며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스파이더맨'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지만, 정작 사랑하는 친구들과 연인 앞에서조차 그 가면을 벗을 수 없는 외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영화 속 한 장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진 그레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에게 어떤 모습이 진짜 너냐고 묻는 장면이다. 가면을 쓴 스파이더맨이 진짜인지, 가면을 벗은 피터 파커가 진짜인지 그녀는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나는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속으로 대답했다. '가면을 벗은 모습이 진짜가 아닐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마치 그동안 내가 품어왔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해주듯, 아주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둘 다 나야!"

 

그 한마디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마음속 실타래가 스르르 풀리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문득, 얼마 전 공부한 분석심리학에서 칼 융이 이야기했던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융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보여주는 얼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는데, 이는 원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쓰던 가면을 뜻하는 말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결코 한 가지 얼굴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나 역시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직장인으로서의 가면, 엄마로서의 가면, 때로는 딸로서의 가면까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춰 그때그때 가면을 바꿔 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내가 정말 누구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회사에서는 책임자로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자녀들 앞에서는 든든한 부모로 남아야 하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가면의 수가 적을수록 행복할 거라고 믿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삶의 무게가 버겁고 힘들 때면, 그 가면들을 훌훌 벗어 던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고민하며 밤을 지새운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가면 그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저 멋진 가면, 완벽한 가면만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 부족하고 어설픈 가면 속의 모습까지도 나라는 사실을, 나는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가면을 쓰든 쓰지 않던 그중 어느 하나만이 나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가면들 속에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애써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그 모든 모습이 결국 나라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까지도 말이다.

 

내 안에도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가 함께 살고 있다. 누군가 내게 어떤 모습이 진짜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주인공처럼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여러 가지 가면을 쓴 모습도, 가면을 벗은 모습도, 결국 둘 다 나라고.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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