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학교에 새로 전근을 갔을 때 졸업반을 맡게 되었는데 한 아이가 지각을 했다. 옆의 아이들에게 물으니 그 아이는 전설적인 아이라는 것이다. 먼 시골에서 올라와 홀로 자취를 하는 아이였는데 2교시에도 오고 점심시간에도 오고 심지어는 친구를 보내어 모셔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란다. 어느 날은 시간을 내어 물어물어 먼 곳에 있는 자취집을 찾아갔다. 지각을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이는 내 궁금증에 대답하기를 아무리 애를 써도 제 시간에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잠이 많을 성장기라 이해는 가지만 이는 필시 늦게 자기 때문일 것이고 반드시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있을 터, 방을 수색하여 만화책 등 두어 상자를 수거했다. 골목 바깥까지 따라오며 애걸하는 것을 달래 협상을 하고 돌려보냈다. 협상의 조건은 단순했다. 남은 기간 지각을 두 번까지는 허용을 해 줄 테니 세 번을 채우지만 않으면 졸업식 날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거짓말처럼 그 후로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남은 기간을 마치고 졸업식 날 커다란 보자기를 들고 압류품을 찾으러 왔다.
여지(餘地)란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이용할 수 있는) 남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관용적인 의미로 더 널리 쓰인다. 국어사전에는 ‘무엇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따라서 반대로 ‘여지없이 (餘地--)’라는 말은 ‘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이’가 된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에게 제시한 두 번의 지각 허용이 없었다면 아이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한 번의 지각도 하지 않고 졸업을 했을 것이다. ‘쥐도 도둑도 도망할 구멍을 열어 놓고 쫓아야 한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공감이 되었다. 구멍이란 곧 ‘여지’인 것이다.
한비자 설림편(說林篇)에 이러한 고사(古事))가 있다. 주나라 때 인물 환혁(桓赫)이라는 이는 조각을 할 때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해야 한다.’ 고 한다. 코는 크면 작게 깎을 수 있지만 이미 작게 깎은 것은 크게 할 수 없고 눈은 작으면 크게 깎을 수 있지만 이미 크게 새긴 것을 작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 이다. 깎기는 쉬워도 붙이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치에서 유추하여 직장 등 일상생활에서나 대인관계에서나 완벽을 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연(柔軟)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하면서 죄인에게 체벌을 할 때 죄의 경중에 따라 40대 까지는 때릴 수 있다고 했다(신25:3). 그런데 훗날 사도 바울은 예수를 전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모세의 율법에 의해 매를 맞았는데 40에 하나 감한 즉 39대를 다섯 번 맞았다고 한다(고후11:24). 하나를 감한 것은 유대인들의 자비가 아니라 혹시 셈을 잘못하여 사십을 넘어가 하나님의 계명을 위배하게 될까봐 1의 여지를 둔 것이다.
배수진(背水陣)은 최후의 수단이다. 전멸을 각오하고 펼치는 것이다. 달리 방도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아무리 화가 나는 경우에도 돌아갈 다리를 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내 생각은 추호도 틀림이 없지만 자고 나면 어제의 결정이 한스러울 수가 있다. 얼마 전 경북의 산불이 빠르게 확산되고 진화가 늦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이유가 임도(林道)가 없어서라고 한다. 환경 단체들이 산림 훼손을 이유로 임도 건설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산림을 지키려는 생각은 훌륭하나 만일을 위한 여지를 남기지 않아 결과적으로 산림을 잃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체중은 변화가 없으나 체형이 변하고 뱃살이 늘어나 입던 바지들의 허리춤이 작아져 늘려야만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제단사가 몸에 딱 맞게 제단을 해 버리고 늘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아 입을 수 없게 되었다. 사족(蛇足)이지만 완벽보다도 유연이 중요할 때가 많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