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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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신화에 균열을 내는 질문: 달팽이의 느림이 구원한 것들

칠레의 거장 루이스 세풀 베다는 동물의 시각으로 인간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생쥐의 친구가 된 고양이』 는 전혀 다른 종의 동물인데도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작가는 이 책들을 통해 자기와 다른 존재를 향한 조건 없는 연대의 중요함과 인간 문명의 탐욕에 대한 경종을 이야기 한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또한 달팽이가 만나는 다른 종들 사이에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와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도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손자의 ‘달팽이는 왜 느리게 움직이는가?’ 란 질문에 답해주는 형식으로 느림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른들을 성찰하게 한다.

 

평화로운 카라콜(달팽이) 공동체에 살던 한 달팽이는 집단의 구습에 정면으로 균열을 내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 느릴까?" 그리고 "왜 나에게는 이름이 없을까?" 동료 달팽이들은 이 터무니없는 질문을 묵살하거나 불편해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 관습에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질문자는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반항아'로 낙인찍힌다. 이것은 인간 세계의 풍자이다. 아이들은 질문이 많아지다가 학령기가 올라갈수록 질문이 없어진다. ‘질문하지 않는 교실’이 당연하고 대학에서도 강의 마칠 즈음 질문하는 학생은 암암리에 눈총을 받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서 틀을 깨는 질문을 하는 사원은 눈총을 받는 이단아, ‘반항아’ 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질문이고 새로운 시각이라고 가르치면서 현실에서는 왜 이들을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

 

답을 얻지 못한 달팽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느림의 이유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느림이란 무엇인가? 느림의 기준은 무엇인가? 속도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거북이에게 달팽이가 "당신은 정말 빠르군요!" 라고 말하자, 거북이는 평생 처음 들어보는 말에 놀란다. 늘 느림의 대명사로 불리던 거북이조차 달팽이의 시선에서는 빠른 존재였던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느림'은 생명체가 원래 타고난 본연의 속성을 인간중심적, 혹은 효율 중심적 잣대로 규정한 지표일 뿐이다. 달팽이가 걷는 속도는 결코 '결함'이나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달팽이라는 존재가 세계와 호흡하는 '고유한 리듬'이자 생존의 방식이다. 느리기 때문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 달팽이가 만약 뱀이나 토끼처럼 빠르게 달리는 존재였다면 절대 관찰하지 못했을 풍경이 있다. 바로 땅바닥을 쉼 없이 오가는 개미떼다. 달팽이는 느린 속도로 이동했기에 미세한 땅의 진동과 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아스팔트'라는 흑색의 거대한 문명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으며, 곧 이 자리에 위험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다. 달팽이는 자신의 발견을 전달하여 개미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개미들은 "느리게 와 주어서, 그래서 우리를 발견해 주어서 고맙다" 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이 순간 달팽이는 자신이 왜 느리게 태어났는지 그 존재 이유를 비로소 깨닫는다. 느림은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빠른 자들이 스쳐 지나치는 위험을 미리 감지해 내는 위대한 시선이었던 것이다. 관습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이 우화는 맹목적인 속도 경쟁과 관습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매서운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어 남들이 가니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타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달팽이의 질문을 '유난스러운 것'으로 치부한다. 속도에 찌든 인간 사회는 스스로를 효율적이라 믿지만, 정작 주변의 생명과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현실을 전혀 보지 못하는 관습이라는 맹점에 갇힌다.

스스로 '반항아'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관습에 균열을 낸 달팽이는 결국 공동체 전체를 구원하는 지도자로 거듭난다. 진정한 지혜는 거창한 도약이 아니라,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정직하게 둘러보는 데서 시작한다.

 

나와 친한 지인 중 한 분은 아들이 타투 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정해서 가는데, 본인도 아들을 처음에는 지지하기가 어려웠고, 주변에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진 일반적인 타투에 대한 편견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일반화되지 않은 길로 가는 도전은 아직도 이렇게 지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아들은 자신에 대한 의문을 갖고 그 길을 찾았을 수도 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그 길에 자신의 거대한 꿈이 있을지 어떻게 아는가? 누가 미래를 알겠는가 말이다. 이 책은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느린 존재에 대한 의문과 의심, 그것으로 새로운 바깥 세계로의 도약, 관습을 전복시키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책을 통해 ‘인간들은 관습이라는 틀에 매인 채, <평생 똑같은 일과 동작,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한다.’ 고 이야기 한다. 『빨간 피터팬의 고백』에서도 밀림에서 잡혀 온 원숭이가 상자 안에 갇혀 관찰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들은 자유롭다고 여기지만 같은 시간 같은 행동들을 반복할 뿐이라고 했다. 우리의 자유롭다는 일상은 패턴화 되고 습관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습에 매몰된 우리의 생각들은 무엇인지 잠시 멈추어 서서 달팽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양미현]

 

○ 교육학박사

○ 김해구지초등학교  교장 

○ 저서

<독서의쓸모> 미다스북스, 2024

<진로독서가이드북-초등학교>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2024

<하루10분 생각습관 하브루타>, 미다스북스, 2018

○ 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이음교육연구소장

○ 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집필위원 (2016~현재)

○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연구원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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