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오늘날,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역사적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는 이미 인간이 평생에 걸쳐 쌓아야 할 지식의 양을 단 몇 초 만에 정리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 앞에서 교육은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가?
과거의 교육은 지식을 많이 축적한 자를 “지혜롭다” 평가했다. 그러나 AI 시대의 교육 현장에서 과거의 패러다임을 여전히 고수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AI 시대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가르는 기준은 이제는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지식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 고유의 본질을 활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AI 시대의 어리석은 자는 ‘지식의 소비자에 머무르는 자’이다. 이들은 AI가 내놓는 정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편의성에 자신의 사고를 맡겨버린다. 미국의 기술 철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그의 명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과도한 의존은 인간 뇌의 깊은 사고와 집중 능력을 퇴화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AI가 모든 답을 대신 찾아주는 시대에,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자는 결국 지적 주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정답을 찾는 데 집착하는 자’라 할 수 있다. 과거 입시와 시험 중심의 교육에 길들여진 이들은 여전히 표준화된 답을 빨리 찾아내는 것을 실력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정답을 내놓는 속도와 정확성에서 인간은 결코 AI를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정답만을 추구하는 인간은 AI의 가장 쉬운 대체재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 이는 질문을 던지고, 맥락을 읽으며, 윤리를 더하는 자라 할 수 있다. AI 시대의 지혜로운 자는 AI를 경쟁 상대가 아닌 ‘지적 증폭기(Intellectual Amplifier)’로 활용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역량을 소유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AI는 질문의 수준만큼만 답을 준다. 지혜로운 자는 타성적인 질문에 머물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질문을 던진다. 교육학자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그의 저서 《교육의 종말(The End of Education)》에서 “모든 지식은 질문의 형태로부터 나온다. 질문의 변화가 곧 지식의 변화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AI 시대에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이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을 구성하는 능력이라 할 것이다.
둘째, 맥락을 읽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능력이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종합해 그럴듯한 답변을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는 ‘환각(Hallucination)’과 편향성이 존재한다. 지혜로운 자는 AI가 준 정보를 무조건 신뢰하지 않고, 맥락을 파악하며 오류를 검증한다. 정보의 바다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고, 이를 자신의 삶과 사회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는 혜안을 발휘한다.
셋째, 인간적 공감과 윤리적 성찰을 더하는 능력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저서 《나와 너(Ich und Du)》에서 인간관계의 본질을 ‘나와 그것(도구적 관계)’이 아닌 ‘나와 너(인격적 관계)’로 설명했다. 어리석은 자는 인간마저도 효율성의 도구로 바라보지만, 지혜로운 자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을 깊게 만든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따뜻한 공감, 도덕적 판단,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응답하는 윤리적 책임감 등이야말로 지혜의 정수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교육은 아이들을 어떻게 지혜로운 자로 키워낼 것인가? 가장 우선적으로 지식의 주입에서 ‘질문하는 방식’으로 교육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교실은 교사의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다듬어가는 ‘탐구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 경쟁에서 ‘협력적 창의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AI라는 거대한 지능을 활용해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 불평등, 윤리적 난제를 함께 해결하는 연대 의식을 가르쳐야 한다. 더불어 기술 교육을 넘어 ‘인문학적 성찰’로 나아가야 한다. 코딩과 AI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바람직한 사회란 무엇인가?” 등을 묻는 철학적·인문학적 기반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20세기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우리가 지금 알고 이해하는 모든 것에 한정되어 있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포용하며 진보를 촉진하고 진화를 낳는다.” AI 시대의 지식은 더 이상 독점적 자산이 아니다. 지식이 널리 보편화된 세상에서 진짜 가치를 갖는 것은 정보를 연결하는 상상력, 문제의 본질을 파고드는 질문, 그리고 그것을 올바르게 쓰고자 하는 도덕적 지혜다.
기술이 날로 세밀화되고 정교화되어 인간의 지능을 닮아갈수록, 인간은 더욱 인간다운 지혜를 갈구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AI가 주는 답에 안주하며 사고를 멈추는 어리석은 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AI를 발판 삼아 더 깊은 질문과 공감으로 세상을 넓혀가는 지혜로운 자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교육은 지금, 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할 것이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