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정홍순(1720숙종 46~1784정조 8)이라는 훌륭한 재상이 있었다. 그가 호조판서로 있을 때 수하에 김 모라는 착실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늘 꾀죄죄하게 가난을 못 벗어나고 있어 하루는 홍순이 물었다. “자네는 나라에서 주는 봉록으로 살림이 펴지지 않는가?” “아니올시다. 봉록은 넉넉하오나 군식구가 20여 명이라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네네 식구는 몇인가?” “여섯 명이올시다.” “그럼 군식구들을 다 쫓아 보내게” “저를 의지하고 있는 가난한 친척들이라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해직일세. 내일부터 나오지 말게.”
이렇게 김 모는 어이없이 해직을 당하고 말았다. 그 후 일 년 뒤, 정홍순은 사람을 보네 김 모를 불렀더니 그는 더 초라한 모습으로 호조에 나타났다. “아직도 군식구를 먹이는가?” “아니올시다. 제가 해직 당하자 하나 둘 다 제 발로 가고 지금은 제 식구 여섯뿐입니다.” “하하 그것 참 잘되었네. 내일부터 다시 호조에 나와 일을 보게. 하도 딱해서 자네 대신 군식구를 쫓아 준 걸세. 섭섭하게 생각 말게. 여기 일 년 치를 모아둔 봉록이 있으니 가져가게. 실은 자네를 해직시킨 게 아니라 휴직으로 해 두었네. 휴직 기간 법에 따라 지급되는 돈일세. 현직에 있을 때보다는 적으니 그리 알게.”
홍순의 조처는 그 식솔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었다. 더 이상 얹혀 살 방도가 없자 군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았다.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려면 군살을 빼야 하고, 보다 넉넉한 삶을 살려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한편, 성경은 하늘에 가기 위해서도 불필요한 것을 버리라고 한다.
예수는 산상수훈에서 모여든 무리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그리고 이 말씀은 소위 말하는 명언집에 수록되었고 앙드레지드의 소설을 비롯한 많은 문학작품들의 모티프가 되었으며 셀 수 없는 설교들의 주제가 되고 있는 말씀이다. 좁은 문이란 도대체 얼마나 좁은 것일까? 부지들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바늘귀만큼 좁은 것일까?
이 좁은 문에 관한 궁금증은 늘 피상적으로만 머릿속을 유영(遊泳)하고 있을 뿐 또렷이 잡히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릎을 치게 하는 사건을 만나고야 확연히 깨달아졌다. 그것은 공항 검색대에서였다. 나 보다 체구가 두 배나 커 보이는 사람도 무사히 통과를 하는데 비쩍 마른 나는 통과하지 못하고 제지를 당했다. 탑승할 수 없는 물품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열쇠고리에 부착된 아주 조그만 맥가이버 칼이었고 한 번은 고추장 팩이었다. 미국 동부까지 오랜 시간을 비행해야 하고 기내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나는 아내가 준비해준 고추장을 화물로 부쳐버렸기 때문에 비행기 속에서 이거라도 도움이 될까하고 공항에서 준비한 것인데 제지를 당한 것이다. 덕분에 쫄쫄 굶었지만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흔히들 수도권의 대학들은 지방대들 보다 문이 좁다고 한다. 측량을 해 보니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대학이 원하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가 말한 좁은 문이란 하늘에 부적절한 어떤 것을 소지하고는 들어갈 수 없는 문이다. 그것은 ‘자아(自我)’이다. 자아란 ‘분노와 탐욕과 욕망과......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세상에 대한 애착이다’ 소지품을 빼앗기고 나자 이 말이 안개가 걷히고 산의 윤곽들이 서서히 드러나듯이, 하얗던 인화지에 폴라로이드 사진이 서서히 나타나듯이 나타났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바울도 거들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 그래서 신께서는 오늘도 검색대에서 걸릴만한 것들을 내게서 다 빼앗으신다. 나의 원망, 나의 아픔까지도 아랑곳 않으시고서 – 하늘에 가기 위해서는 넉 잠을 자고 난 누에처럼 도든 것을 다 비우고 투명해 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