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거 ‘막꼬’예요, ‘말꼬’예요?”
국어 시간, 소리 내어 책을 읽던 아이가 ‘맑고 맑게’라는 구절 앞에서 멈칫한다. ‘막꼬 막께’로 읽어야 할지, ‘말꼬 말게’로 읽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이다. 글자 원리를 깨치지 못한 채 모양과 분위기로 추측하는 ‘짐작 읽기’에 머문 아이들은 낯선 글자 앞에서 늘 혼란에 빠진다.
오늘날 교육 현장의 학력 저하와 문해력 위기를 단순한 학습량 부족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 근본적인 원인이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한글 배움 방식’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교육계 내부의 문제를 넘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기반까지 흔들 수 있다.
글자를 외운 아이들, ‘짐작 읽기’의 늪에 빠지다
아이들이 낯선 글자 앞에서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글자와 소릿값을 연결하는 힘, 즉 음운력이 충분히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글자로 단숨에 글자를 떼는 것을 성공적인 교육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소리 규칙을 연산하지 못한 채 낱말을 통째로 외우는 방식은, 학습할 어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문장이 복잡해지는 순간 곧바로 치명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기초 음운력이 빈약하면 단어를 아무리 외워도 새로운 글자를 만나면 다시 외워야 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대로 원리를 깨친 아이는 처음 보는 글자도 이미 알고 있는 규칙을 적용해 스스로 해결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작은 차이는 문해력을 넘어 전 교과의 ‘학력 격차’로 크게 벌어진다.
불편한 동거를 끝내는 열쇠, ‘소릿값 중심 1음절 학습’
통글자로 낱말을 통째로 암기하는 방식은 세종이 설계한 훈민정음 학습법이 아니다.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가장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외우게 하는 현실, 즉 위대한 유산 훈민정음과 왜곡된 암기식 교육이 맺어온 이 불편한 동거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단순히 소리를 적는 기호가 아니다. 수학처럼 명쾌한 구조와 논리를 갖춘 ‘원리와 규칙의 과학’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단순히 외워야 하는 문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원리와 규칙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설계된 문자다.
학력 저하 고리를 끊고 바른 배움으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소릿값 중심 1음절 학습’이 우선되어야 한다. 닿소리와 홀소리가 만나 하나의 음절 안에서 어떤 정교한 결합 규칙으로 소릿값을 만들어내는지 그 원리를 낱낱이 깨치도록 도와야 한다.
통글자 암기 방식은 수학에서 숫자의 원리와 연산 과정을 가르치지 않은 채 정답만 외우게 하는 것과 같다. 당장 눈앞의 성과는 빨라 보일지라도, 낯선 글자를 스스로 판별하고 읽어내는 자생력은 결코 길러지지 않는다. 가장 작은 단위인 1음절에서 소릿값 규칙을 스스로 발견하고 판별하는 훈련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2음절 낱말은 물론 복잡한 문장까지 짐작 없이 읽고 쓰는 힘이 자라난다.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4개 개념 나침반’
원리를 깨치려면 훈민정음을 설명하는 기준과 개념부터 명확히 세워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다음 ‘4개 개념 나침반’이 바로 서야 할 때다.
• 소릿값: 낱자를 알아들을 수 있게 내는 소리 (낱자 단위 소리 : 재료)
• 발음: 낱자가 결합하여 알아들을 수 있게 내는 소리 (완성된 글자 단위 최종 결과물)
• 홀소리(모음): 도움 없이 홀로도 알아들을 수 있게 내는 소리 (자립 단위)
• 닿소리(자음): 홀소리와 결합해 도움을 받아야만 알아들을 수 있게 내는 소리 (의존 단위)
이 네 가지 기준이 바로 서면 무엇이 바른 배움인지, 왜 낱자 단위인 ‘소릿값’과 완성된 글자인 ‘발음’을 혼동해선 안 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선생님, 닿소리를 ‘그·느·드’처럼 모음 ‘으’를 붙여 발음하면, ‘몸’을 읽을 때 받침 ㅁ도 ‘므’로 읽나요? 그러면 ‘므오므’가 되는데 이상하잖아요?”
선생님도 선뜻 답하지 못한다. 이처럼 4개 개념 나침반이 명확하지 않으면 글자와 소릿값을 정확히 연결하는 힘, 곧 음운력을 기를 수 없다. 나아가 ‘자음은 아들, 모음은 엄마’와 같은 비과학적인 비유가 아이들의 올바른 개념 형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방해하는지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개념이 분명해지면 이해가 쉬워지고, 이해가 쉬워지면 원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느림을 견딘 아이, 원리를 발견하는 꼬마 과학자가 되다
소릿값 원리를 스스로 탐색하고 깨치는 과정은 처음에는 조금 느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라,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한 가장 바르고 단단한 준비다. 그러자 아이들은 가운뎃소리가 모두 하늘 점 하나 아니면 둘이라는 것을 스스로 찾아낸다.
“선생님, 하늘 점 하나니까 ‘ㅡ’! ‘그-아’ 하고 소릿값을 내 보니 ‘가’가 되네요!”
“또, 하늘 점 둘이니까 ‘ㅣ’! ‘기-야’ 하고 소릿값을 내 보니 ‘갸’가 되네요!”
“선생님, 너무 재밌고 쉬워요. 처음 보는 글자도 읽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더 이상 “막꼬예요, 말꼬예요?” 하고 망설이지도, “몸이 왜 ‘므오므’가 되나요?” 하고 혼란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명확한 개념을 세우고 규칙을 깨친 아이의 두뇌에는 논리적 사고 회로가 자리 잡는다. 암기 굴레에서 벗어난 아이는 단순 암기자가 아닌 원리를 찾아내는 ‘꼬마 과학자’가 되어 스스로 읽고, 스스로 생각하며, 스스로 배움을 확장해 나간다. 기호와 규칙 관계를 파악하는 이 힘은 수학 연산 능력을 넘어 모든 교과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는 가장 튼튼한 뿌리가 된다.
반면, 이 ‘느림’의 가치를 외면할 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막대하다. 문해력 부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재교육 비용을 늘리고, 청년층의 취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교육 현장과 제도가 훈민정음의 과학적 원리를 되살리지 않고 통글자 암기를 고집한다면, 이는 미래 세대의 사고력을 갉아먹는 뼈아픈 실책이 될 것이다.
문해력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더 빠르게 글자를 외우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설계도에 담아놓은 규칙과 과학 원리, 그리고 소릿값 중심 교육 철학을 아이들에게 다시 되돌려주어야 한다.
오늘 당장, 아이와 함께 책을 펼치고 낱말을 통째로 읽어주기보다 글자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진짜 소릿값’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에도, 그렇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깨칠 수 있다”
이 훈민정음 해례본 선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처음에는 느려 보일 수 있지만, 세종이 설계한 ‘소릿값 중심 1음절 학습’의 규칙과 원리를 되찾아 오랜 ‘불편한 동거’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문해력을 넘어 진정한 학력을 키우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 작은 원리의 회복, 즉 바른 ‘배움’으로의 전환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고, 국가 경쟁력의 기반을 다지며,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필자 소개 | 장덕진
전 초등교사(정년퇴임)
규칙과학 ‘소릿값 내기 한글’ 연구소장
40여 년간 초등교육 현장에서 훈민정음 원리를 연구해 온 현장 연구자
※ 관련 연구보고서
장덕진, 「소릿값 내기 한글 연구 보고서」
(링크) https://hangeulstudy.com/pdf/2025jang.pdf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