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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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교육만 바꿨는데, 수학이 16.35점 올랐다

한글을 가르치는 방식을 바꾼 지 한 학기. 아이들의 수학 성적은 평균 16.35점 올라 있었다. 계획되고 의도하지 않은 초등 4학년 1학기 말과 2학기 말 일상적인 학교·교육청 정기평가 결과를 비교 분석해 얻은 수치다. 가장 먼저 그 숫자를 믿지 못한 사람은 연구자인 나였다. 국어 교육 방식에 대한 연구였기에 수학 점수의 극적인 변화는 애초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쉽게 일반화할 수 없는 우연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 여겼다.

 

며칠 동안 자료를 다시 들춰 보았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더 많이 가르쳤나? 아니었다. 방과 후 보충수업을 따로 진행했나? 아니었다. 혹시 계산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다른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씩 지워 나가고 나니 끝내 하나의 사실만 남았다. 교실에서 바뀐 것은 한글 교육뿐이었다.

 

그때부터 질문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글을 배우는 방식이 도대체 어떻게 수학까지 바꿀 수 있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아이들이 글자를 읽을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인지 과정을 추적해 보았다.

 

기존 교실에서는 대부분 글자의 모양을 덩어리째 외우게 하는 ‘통글자 암기’ 방식으로 한글을 가르친다. 수많은 낱말을 그림처럼 하나하나 기억해야 하는 방식이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글을 읽을 때마다 형태를 기억 속에서 찾아야 하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인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흔히 이를 에너지가 줄줄 새어나가는 '논둑의 미꾸라지 구멍'에 비유하곤 한다. 단순히 글자의 형태를 검색하고 암기하는 데 귀중한 사고 역량이 다 빠져나가다 보니, 정작 읽은 내용을 이해하고 다음 단계의 사고로 나아갈 여력이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맹목적인 암기 대신,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원리인 ‘소릿값 규칙’을 교실에 도입했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 어떻게 소리가 변하는지, 그 규칙을 이해하고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 내도록 한 것이다. 비로소 교실에서 일어난 변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체계를 배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이전과 다른 인지 과정이 나타났다. 덩어리로 뭉쳐진 글자를 낱개로 나누어 눈으로 확인하고(입력), 가운뎃소리에 찍힌 점의 개수를 파악해 첫소릿값을 계산하며(연산), 받침의 끝소릿값을 스스로 추론하고(발견), 이를 첫소릿값과 이어 붙여(결합) 마침내 입 밖으로 내뱉는(출력: 발음) 일련의 과정이다. 글자를 그저 눈으로 보고 외우는 대신, 스스로 규칙을 찾고 대입하여 결과를 찾아내는 5단계의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글자와 소릿값을 정확히 연결하여 읽고 쓰는 음운력을 강화하는 이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해졌다. 주어진 요소들 사이의 규칙을 발견하고, 논리적으로 비교하며, 인과관계를 추론해 답을 내는 이 일련의 사고가 과연 한글을 읽을 때만 쓰이는 것일까?

 

수학 역시 수와 공간의 규칙을 발견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암기라는 짐을 덜어내고 스스로 규칙을 찾는 훈련을 반복한 아이들은, 글자를 읽는 데 낭비되던 인지 자원을 아껴 다른 교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단련된 논리적 추론 경험이, 낯선 수학 문제를 마주했을 때도 스스로 논리를 전개하는 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문해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학력 향상이 아닐까?

 

실제로 교실의 변화는 수학에만 머물지 않았다. 여러 학급에 적용해 본 결과, 8개 반 학생 분석 자료에서 76.7%(30명 중 23명)의 학생이 이전보다 높은 평가 결과를 보였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4개 교과의 평균 점수 역시 9.25점이나 동반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수학 영역에서 16.35점이라는 가장 극적인 향상이 눈에 띄었던 이유는, 이 과목이 문해력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 추론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16.35점이라는 숫자는 그저 하나의 지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수치가 우리 교육 현장에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만약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특정 교과의 성취를 넘어 다른 교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먼저 가르쳐야 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아이들은 답을 외운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교육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육은 지식을 채워 넣는 일이 아니라, 생각이 스스로 자라도록 길을 내주는 일이다.

 

수학을 바꾼 것은 수학 교육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한글 교육이었다.

 

낱말과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암기식은 애초에 우리에게 맞지 않는 낡은 옷이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겉치레 자랑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수학처럼 정교한 규칙 과학이 숨 쉬는 우리의 ‘훈민정음 해례본’, 그 소릿값의 이치를 교실에 다시 불러와야 한다. 거센 문해력 위기가 덮친 바로 지금이야말로, 먼지 쌓인 세종의 설계도를 다시 펼쳐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을 깨워야 할 가장 절박하고도 완벽한 적기다.

 

※ 관련 연구보고서

장덕진, 「소릿값 내기 한글 연구 보고서」

(링크) https://hangeulstudy.com/pdf/2025jang.pdf

 


 

필자 소개 | 장덕진

전 초등교사(정년퇴임)

규칙과학 ‘소릿값 내기 한글’ 연구소장

훈민정음을 40여 년간 초등교육 현장에 적용하며 「소릿값 내기 한글」 원리를 연구해 온 현장 연구자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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