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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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문해력 뿌리를 찾아서

깊은 뿌리만이 태풍을 견딘다. 보이지는 않지만, 수십 미터 땅속 암반을 비집고 들어가 기어코 닻을 내린 나무는 거센 태풍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 교실을 덮친 ‘문해력 위기’라는 매서운 비바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위기의 뿌리는 무엇이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문해력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그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을 들여다보자.

 

문해력 위기의 뿌리, ‘원리’를 잃은 암기 교육

스마트폰의 일상화나 독서량 감소만으로 이 거대한 위기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보다 뼈아픈 근본 원인은, 한글을 깨쳐야 할 ‘원리’가 아니라 무작정 주입해야 할 ‘암기’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낡은 교육 방식에 있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실시한 받아쓰기 평가에서는 전체 학생의 65.45%가 80점 미만을 기록했다. 이는 상당수의 아이들이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형태를 짐작해 읽고 있음을 시사한다.

 

암기는 기억을 남기지만, 원리는 사고를 남긴다

인류의 뇌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쌓아두는 수동적인 창고가 아니다. 스스로 규칙을 발견하고,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며, 낯선 상황에 배움을 적용하는 고도의 ‘연산 기관’에 가깝다.

 

그러나 기존의 통글자 학습은 아이들에게 완성된 글자를 하나의 그림처럼 쥐여 주며 외우기를 강요한다. 치열한 탐구 과정은 사라지고, 남이 수확한 결과만 남는다. 정답만을 주입받은 뇌는 생각할 기회를 잃는다. 작은 비바람에도 금세 길을 잃고 마는 이유다. 문해력은 단순한 암기의 축적이 아니라, 원리를 좇는 치열한 사고의 과정 속에서만 단단하게 자란다.

 

‘소릿값 연산’은 생각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문해력의 뿌리는 어떻게 다시 깊게 내릴 수 있을까. 해답은 아이들이 글자를 그저 외워야 할 ‘그림’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 숨겨진 소리의 질서를 스스로 찾아 나서는 탐험가가 되게 하는 데 있다.

 

‘소릿값 연산’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지적 탐험이다. 아이는 더 이상 완성된 글자를 그냥 외우지 않는다. 글자의 안쪽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 보이지 않던 구조를 하나씩 살핀다.

 

처음에는 낱자들을 흩어 보며 글자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숨은 얼개를 들여다본다. 이어 아이는 가운뎃소리에 찍힌 ‘하늘(•) 점’을 만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점은 오직 하나 아니면 둘이다. 아이는 곧 이 작은 점들이 품은 오래된 약속을 알아챈다. 하늘 점이 하나이면 너른 ‘땅(ㅡ)’으로 내려가 첫소리의 길을 열고, 하늘 점이 둘이면 곧게 선 ‘사람(ㅣ)’에게 다가가 첫소리의 시작을 알린다는 약속이다. 아이는 마치 세종이 남긴 오래된 암호를 풀 듯, 하늘 점을 헤아려 땅(ㅡ)의 소리로 시작할지 사람(ㅣ)의 소리로 시작할지 스스로 ‘첫소릿값’을 계산해 낸다.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받침을 만나면 끝소릿값이 어떻게 변하는지, 홑받침과 쌍받침은 하나의 대표음으로 모이고, 겹받침은 닿소리의 순서에 따라 ‘형님소리’와 ‘동생소리’로 나뉜다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찾아내며 끝소리의 길을 닦는다. 마침내 길을 잃고 흩어져 있던 ‘첫소릿값’과 ‘끝소릿값’이 하나의 약속으로 만나는 순간, 글자는 비로소 살아있는 ‘소리’가 되어 아이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은 아이의 목소리로 그 ‘발음’을 빚어내는 시간이다. 누군가 정해준 발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직접 찾아낸 낱자들의 ‘소릿값’을 엮어 하나의 온전한 ‘발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소릿값이 아이의 입술을 통해 읽고 쓸 수 있는 ‘소리’로 피어나는 순간, 음운력이라는 단단한 열매는 비로소 아이의 것이 되어 튼튼한 문해력의 뿌리로 자리 잡는다.

 

낱자를 살피는 시작부터, 하늘 점이 품은 땅(ㅡ)과 사람(ㅣ)의 이치로 첫소릿값을 헤아리고, 규칙을 찾아내어, 마침내 글자와 소릿값을 정확히 연결해 자기만의 목소리로 발음해 내기까지. 이 다섯 걸음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다. 아이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사고가 비로소 깊은 뿌리를 내리는 순간이다. 소릿값 연산은 단순히 한글을 배우는 길을 넘어, 아이가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발견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길어 올리는 힘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국어를 넘어 수학으로, 사고력의 위대한 전이

깊고 단단하게 내린 뿌리는 나무 한 그루를 지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숲 전체를 일깨운다. 사고의 경로를 개척한 뇌에서도 이와 유사한 확장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4학년 8개 학급에 소릿값 연산 모형을 적용한 결과, 하위권 학생의 76.7%가 평균 이상의 성장을 보였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수학’ 과목의 변화였다. 수학 성취도가 평균 16.35점 상승한 것이다.

 

이 지표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글의 소릿값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며 뇌를 깨운 경험이 수학적 사고 과정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문해력이 단순한 국어 능력을 넘어, 아이의 사고력 전반을 움직이는 든든한 밑거름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오래 선다

문해력 위기를 해결하려면 암기식 한글 교육에서 소릿값 원리를 스스로 발견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암기하는 한글에서 연산하는 한글로.”

 

교육의 책무는 정답을 손에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단단한 근육을 길러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나무도 뿌리가 얕으면 거목이 될 수 없듯, 우리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도 마찬가지다.

 

뿌리 깊은 나무가 모진 태풍에도 기어코 생명을 지켜내듯, 아이들이 글자 속 소릿값의 원리를 스스로 발견하고 글자와 소릿값을 연결하는 순간 문해력의 뿌리는 깊고 단단하게 내린다. 문해력을 지키는 힘은 눈에 보이는 글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자란다. 결국 문해력도 뿌리가 깊어야 산다.

 

※ 관련 연구보고서

장덕진, 「소릿값 내기 한글 연구 보고서」

(링크) https://hangeulstudy.com/pdf/2025jang.pdf

 


 

 

필자 소개 | 장덕진

전 초등교사(정년퇴임)

규칙과학 ‘소릿값 내기 한글’ 연구소장

훈민정음을 40여 년간 초등교육 현장에 적용하며 「소릿값 내기 한글」 원리를 연구해 온 현장 연구자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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