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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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죽음 앞에서

한 해 농사의 풍흉(豐凶)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추수 때이다. 풍작인 줄 알았는데 수확이 허망할 때가 있고 농사를 망친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소출이 많을 때도 있다. 사람도 그렇다. 그가 잘 살았는지 잘 못 살았는지는 장례식을 가보면 안다. 어떤 이는 잘 사는 것 같았는데 정작 장례식에 가 보면 싸늘한 분위기이거나 여기저기서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수군거려지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저 그렇게 산 줄만 알았는데 미담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정작 정승이 죽었을 때 보담도 그가 기르는 개가 죽었을 때 조문객이 많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력자가 살았을 때는 면전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비위를 맞추던 사람들도 그가 유명을 달리하고 나면 깃털처럼 가볍고 부운(浮雲)처럼 무상한 그 모든 감칠 맛 나던 언어들을 거두어들이고 진심어린 평가들을 쏟아놓는다.

 

그 동안 숱하게 많은 장례식을 참석했고 어떤 장례식은 단순한 조문객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자로 또는 기도자로 참석한 것도 부지기수다. 장례식의 풍경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그저 무덤덤한 장례식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민망한 장례식도 있다. 기도를 부탁받았을 때 고인에 대한 어떤 위로도 부활에 대한 소망도 말할 수 없어 난감하고 막막한 장례식도 있었고 고인이 요절했거나 횡사(橫死)한 경우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왕들의 장례도 모두 같지는 않다. 열왕의 묘실에 들지 못한 왕들도 있었고 (대하21:20, 24:25, 26:23, 28:27)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왕도 있다(대하21:20). 반면 그가 죽었을 때 온 나라가 슬퍼하고 애가를 지은 왕도 있었다(대하35:24,25).

 

최근에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길이 기억될 만한 장례식이었다. 장례식 내내 많은 조문객들이 울었고 이른 아침인데도 발인장은 만원이었으며 모두들 고인과의 이별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의례적인 인사나 입에 발린 위로는 없었고 고인과의 미담이 줄을 이었다. 성경 민수기라는 책에는 “나는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23:10).”라는 구절이 있거니와 의인은 살 때는 물론 죽어서도 감동을 준다. 예수가 운명할 때 로마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23:47).”라고 고백한다.

 

한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밀림 속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7년이나 열심히 복음을 전했으나 단 한 사람 고작 17세 된 소녀 하나를 얻었을 뿐이었다. 소녀는 가족과 이웃들로부터 모진 학대와 핍박을 받았으나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그 소녀가 불치병에 걸렸고 선교사의 눈물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잠들고 말았다. 주술사는 기다렸다는 듯 신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떠들었고 남은 것의 선교사의 죽음이나 운이 좋으면 추방 정도만 남았다.

 

장례식 다음 날 추장과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올 것이 온 것이리라. 선교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았다. 곧이어 날아올 돌멩이나 몽둥이, 아니면 죽창일지도 모른다. 한참의 침묵 끝에 추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들도 당신이 전하는 신을 믿고 싶소. 우리에게도 복음을 전해 주시오.” 선교사는 귀를 의심했다.

추장은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오. 그래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으나 죽음에 이르러는 온몸으로 죽음을 거부하며 발버둥을 치다가 처참하게 숨을 거두고 있소. 그런데 저 소녀는 몹시 평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소. 그것이 당신이 전하는 신 때문이라면 우리도 믿고 싶소. 제발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시오.” 선교사가 7년 동안이나 헐지 못했던 장벽을 한 소녀가 죽음을 통하여 허물었던 것이다.

 

사람은 죽음을 통해서도 생전에 못 다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은 어쩌면 생애했던 기간 보다 더 오래 회자(膾炙)된다. 나는 숙연한 장례식 앞에서 죽음을 묵상한다. ‘잘 살아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후세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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