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야흐로 문해력의 위기임을 학교 현장의 교사는 물론 교육 전문가들이 나서 심각하게 우려하는 상황이다. 널리 회자되는 바와 같이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지루한 사과”로 오해하고,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알아듣는 교실의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디지털 원주민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숏폼 영상과 자극적인 텍스트에 중독되는 사이, 생각의 뼈대를 이루는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력은 급격히 붕괴되어 왔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교육부는 최근 주목할 만한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독서교육 집중 학년’으로 지정하고, 2030년까지 교과 연계 독서 수업 모델 1,000개를 발굴하겠다는 것이 골자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07.02). 디지털 홍수 속에서 학교를 ‘생각하는 힘’의 보루로 만들겠다는 국가 차원의 책무성 강화는 매우 시의적절하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청사진이라도 학교 현장의 실질적인 역동성을 담아내지 못하면 한낱 ‘문서상 정책’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이에 필자는 이번 ‘독서교육 집중학년제’가 단기성 이벤트나 교사들의 행정 부담 증가로 끝나지 않고, 교실의 체질을 바꾸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두 가지 조치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학생부 자동 기재’보다 시급한 ‘사서교사 배치와 체계적인 운영의 강화’다. 교육부는 이번 방안에서 디지털 플랫폼인 ‘독서로’와 나이스(NEIS)를 연동하여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자동 기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입시와 기록에 민감한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강력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본객전도(本客顚倒)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아이들이 책 읽는 본연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학생부 칸을 채우기 위한 ‘실적용 독서’와 ‘기계적 기록’에 매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각종 교육 정책의 결과에서 배웠듯이 정책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인프라, 즉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교육과정과 독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초3·중1 등 전환기 학생들의 성향을 진단해 맞춤형 독서 상담을 수행할 주체는 다름 아닌 사서교사다. 일반 교사의 역량을 전문적으로 뛰어 넘고 실제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와 없는 학교의 차이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호 대조됨을 각종 통계와 실태는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학교도서관의 사서교사 배치율은 여전히 낙제점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해외의 성공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풀브라이트재단(Fulbright)과 일리노이 대학 공동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전문 사서교사가 상주하며 교과 교사와 협력 수업을 진행한 학교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교에 비해 학업 성취도 및 비판적 읽기 능력이 평균 15~22%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책을 꽂아두는 공간을 넘어, 교과 수업의 허브로서 도서관이 작동할 때 비로소 독서교육이 정착된다는 뜻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 전문 사서교사를 전면 배치하는 강력한 법·제도적 정비야말로 이번 정책의 성패를 가늠할 첫 번째 열쇠라 할 것이다.
둘째, ‘아침 10분 독서’를 넘어선 ‘평가 시스템의 전면 혁신’이다. 정부는 올해 1,000개교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 ‘매일 아침 10분 함께 책 읽기 운동’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상 속 독서 습관을 기른다는 취지는 훌륭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정적(靜寂) 시간’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독서가 학교 교육의 중심축으로 안착하려면 결국 ‘평가’가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아침에 책을 읽고 수업 중에 토론을 한들, 정기고사와 수능이 여전히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풀이와 기계적 암기에 머물러 있다면 고학년으로 갈수록 독서교육은 입시의 장벽 앞에서 멈춰 서고 말 것이다. 영국의 공교육 체계를 살펴보자. 영국의 중등교육 자격시험(GCSE)과 대입 시험(A-Level)은 단순 지식의 유무를 묻지 않는다. 평소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다져진 비판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작성하고 논리적 논쟁을 펼쳐야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영국의 학생들이 입시 전날까지도 도서관에서 두꺼운 인문학 서적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독서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시험 대비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 역시 지필평가에서 서·논술형 평가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교과 연계 독서 활동이 수행평가의 본질적 핵심으로 다뤄지도록 평가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한다. “책을 읽어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현실적 절실함이 작용할 때, 독서교육은 비로소 구호가 아닌 실질적 제도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힘’이야말로 곧 국가 경쟁력임을 천명해 왔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글을 쓰고 지식을 합성해 내는 시대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가짜를 걸러내고 질문을 던지며 깊게 사유하는 비판적 사고력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의 말대로 “디지털 매체 속에서도 아이들이 책 읽는 본연의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중앙일보, 2026.07.01.)이 시대적 과제임을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베스트셀러 시적 정의’에서 독서, 특히 문학을 읽는 것은 타인의 삶을 경험함으로써 그를 나와 같은 인간적 품격과 취약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공감적 참여 이며, 이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고 했다. 자극적 디지털 콘텐츠로 물렁해진 지적 근육뿐만 아니라 공감 근육을 키우는 데도 책 읽기는 필수라는 뜻이다. 요즘 학생들의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고 극우화되는 배경에도 배움의 근본인 읽기(독서)의 소홀함이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교육부가 펼치게 될 독서교육 집중 학년제’ 라는 첫걸음이 단발성 선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학생부의 자동 기재라는 기술적 편리함 뒤에 숨지 말고, 사서교사의 확충’이라는 보다 시급한 인프라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 그리고 객관식 줄 세우기 시험이라는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생각을 평가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 도서관의 불이 환하게 켜지고, 아이들이 책장을 넘기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토의·토론을 생활화할 때,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도 비로소 다시 쓰이게 될 것이다. 거창한 정책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교실과 학교 현장을 바꾸는 단단하고도 과감한 조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시금 독서교육 집중 학년제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이제 철저하고 자상한 세부 계획에 의해 상위 학교급별로 독서 이력이 관리되고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지속적으로 지도하고 교육활동이 이루어짐으로써 우리의 독서교육에 괄목상대(刮目相對)한 발전과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바이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