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월)

인간다움

해가 바뀌면 ‘올해는 좀 나은 해가 되려나’ 기대들을 한다. 아니 기원을 한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천재지변에다가 인재(人災)가 겹치기도 하고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해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전쟁에다 트럼프 발(發) 전쟁까지 겹쳐 물가는 치솟고 생필품까지 수급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극심한 어려움은 인간이 자초한 것이고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도 인간이다.

 

그것이 단순히 예측하거나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 할지라도 어떤 질서 아래 모두가 힘을 합한다면 후유증울 훨씬 줄일 수 있을 텐데도 그것을 통해 오히려 이득을 취하려 한다거나 홀로 면하기 위해 상황을 더욱 악하게 만든다. 전쟁도 국익을 위해 시작하는 일이고 물가가 오르면 사재기를 한다. 한 편에서는 가짜를 만들고 원산지를 속이고 심지어는 인체에 해로운 것도 버젓이 유통을 시킨다. 대한민국은 마약에 위협 받는 국가가 되었다. 정권 수호를 위해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볼모로 전쟁 상황을 획책하기도 하고 국가적이고 국민적인 슬픔마저도 상술에 이용하려 한다. 슬픈 일이다. 이 모든 불행의 기저(基底)에는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상실해 버린 인류의 비애가 있다. 이사카 코타로는 『마왕』이라는 소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다는 모양이야.” “어머나!”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게 되었는데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어머나!”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마를 올려 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어머나!” “대단하지.” 미츠요씨는 소중한 물건에 숨을 불어넣는 말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이 날뛰고 소란을 피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최소한 있지,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 줄줄 아는, 뭐 그게 무리라면 치마를 바로잡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해.” -《마왕》 이사카 코타로 著-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 학살을 자행하던 때,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매일매일 가스실로 보냈다. 그러나 독일군들도 사람인지라 같은 인간을 죽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악랄한 지도자들은 병사들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수용자들의 권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씻을 물도 공급하지 않고 화장실도 대폭 폐쇄해 버렸다. 그래서 모두들 짐승 같은 몰골이 되었을 때 비로소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젊은 수용자가 있었다. 그는 유리 조각을 깨뜨려 매일 매일 면도를 하고 셔츠를 찢어낸 헝겊 조각에 찻물을 적셔 얼굴과 손과 목덜미를 정성스레 닦았다. 병사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이도 닦았다. 독일 병사들이 볼 때 그는 달랐다. 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청년은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 살아남았다.

 

어떠한 환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 위대하고 숭고한 일이다. 모든 것에는 자격이 있고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격은 인격(人格)이다. 사람에게서 인성(人性)을 제하고 나면 수성(獸性)만 남는다. 제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라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모두가 힘을 합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다. 문제는 인간다움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목전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맹신하는 신념을 위해 인간다움 따위는 과감히 버린다. 올해도 많은 정치인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군에서는 많은 별들이 유성우(流星雨)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차마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다 하더라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라도 해야 한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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