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다른 달과는 다른 특별한 달이다. 거리에는 초여름 햇살이 가득하고, 학생들의 마음은 서서히 방학을 향해 달려가는데, 달력 한쪽에는 조용히 태극기가 조기로 걸리는 날이 있다. 바로 현충일이다. 아이들에게 “왜 쉬는 날이냐?”고 물으면 “학교 안 가는 날이잖아요!”라고 단순하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하루가 단지 학교에 가지 않아서 늦잠 자거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날로만 남는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사는 셈이다.
요즘 아파트 베란다를 바라보면 국경일에 태극기 게양을 찾기 어렵다. 현충일에도 예외가 아니다. 거대한 아파트 한 동에 겨우 2~3개의 태극기만이 외롭고 쓸쓸하게 게양되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월드컵 시즌이 되면 온 동네가 붉은 물결로 출렁인다. 축구 국가대표가 골을 넣으면 태극기를 흔들고 거리로 뛰어나오면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을 기리는 날에는 커튼조차 열리지 않는 모습은 어딘가 씁쓸하다 못해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태극기는 월드컵 때만 다는 거 아니었어요?”
웃픈 현실이다. 나라 사랑에도 이벤트 기간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어른들의 모습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국가를 너무 어렵게 가르쳤다. 거창한 애국심, 장엄한 구호, 딱딱한 훈화로만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과서 속 영웅담 이전에 “왜 우리가 지금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깨닫게 하는 일이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학도병들은 지금의 중고등학생 또래였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청년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친구였고, 평범한 이웃이었다. 즉, 그들은 특별한 초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기 자리를 피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 우리가 카페에서 웃고,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밤늦게까지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일상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평화 덕분이다. 이를 우리는 너무도 당연시하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의무조차 게을리하고 있음에 그저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에게 잠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와이파이가 끊긴다면 화가 날까?”, “그렇다면 나라가 사라진다면?”... 교실은 잠시 조용해질 것이다. 자유는 공기 같아서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사라지면 가장 먼저 절실해진다. 그래서 현충일 교육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바로 태극기를 직접 달아보는 일, 순국선열에게 감사 편지 한 줄 써보는 일, 국립묘지 사진 앞에서 10초 만이라도 묵념해 보는 일... 그런 경험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교육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현충일 주간에 “우리 집 태극기 찾기 프로젝트”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놀라운 것으로 보도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태극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결국 온 가족이 창고를 뒤지고 서랍을 열어 겨우 찾아냈다고 한다. 어떤 학생은 먼지가 수북한 태극기를 들고 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 집 태극기가 유물인 줄 알았어요.”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사실은 가슴 아픈 서사다. 태극기가 박물관 유물이 되다니...
아이들에게 국가를 사랑하는 일을 가르치는 것은 거대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통질서를 지키는 일, 세금을 성실히 내는 일, 공공장소를 깨끗이 사용하는 일도 모두 공동체를 위한 행동으로 교육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친구를 괴롭히지 않는 일, 학교 규칙을 지키는 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일이 곧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애국심은 현대의 교실 밖 독립운동이 아니라 교실 안의 작은 배려에서 시작할 수 있다.
6월은 단순히 “쉬는 날이 있는 달”이 아니라 “왜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가는지 생각하는 달”이어야 한다. 가정의 달 5월이 사랑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면, 6월은 책임을 배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국가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연계될 때 건강한 시민의식이 자랄 것이다.
태극기 하나 다는 일이 세상을 바꾸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태극기 하나로 세상이 갑자기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태극기를 다는 사람의 마음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누군가의 희생을 떠올리게 되고, 오늘의 평화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현충일 아침, 아이와 함께 베란다에 태극기를 걸어보자. 그리고 짧게라도 이야기해 보자.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그냥 생긴 게 아니란다.” 그 한마디가 교과서 한 권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이라 믿는다.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국가의 존재와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지 6월을 맞으며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