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정지훈)가 방송 tvN의 ‘유 키즈 온 더 블록’에서 아내(김태희)와의 서로 다른 교육관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한 사람은 “계획적으로 공부시켜야 한다”고 믿고, 다른 한 사람은 “아이들은 뛰어놀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가정의 거실에서 “수학 문제집”과 “놀이터”가 치열한 냉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 분명 부모는 “행복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하는데, 어느 순간 아이는 영어·수학 학원 셔틀버스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행복을 원했는데 시간표는 마치 대기업 임원 스케줄이다. 세상 어느 부모치고 자기 자녀들이 행복하길 원치 않으리? 하지만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는 사회의 풍토상 오늘도 이이들은 이리저리 학원으로 휩쓸리며 놀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무시당하고 말살당하고 있다.
사실 부모의 교육관은 대개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가난하게 자란 부모는 “공부라도 잘해야 산다”는 절박함을 기억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한 부모는 “계획과 관리가 인생을 바꾼다”고 믿는다. 반면 너무 숨 막히게 공부만 했던 부모는 “우리 아이만큼은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비와 김태희의 교육관 충돌은 바로 이런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일 뿐이다.
결국 교육관의 차이는 사랑의 크기 차이가 아니라, 살아온 인생의 차이인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부모는 자꾸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아이에게 복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놀랍게도 부모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다. 즉,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엄마는 계획형인데 아이는 즉흥형일 수 있다. 아빠는 학원 체질이었는데 아이는 자연 체험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아이를 자기들 방식대로 맞추려 한다. 마치 고양이에게 “왜 멍멍 안 하니?”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부모들은 참 바쁘다. 아이가 뒤처질까 봐 늘 불안하다. 유치원생이 코딩을 배우고, 영어학원을 위해 4세 고시, 7세 고시에 몰입하고 초등학생이 토익을 준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 모두 아이보다 부모가 더 조급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진짜 바라는 것은 명문대 합격증인가? 아니면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인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분명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성적이 인생의 행복을 완성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회에는 “스펙은 완벽한데 늘 불행한 사람”도 많고, 반대로 평범하지만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행복은 성적표에 적히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행복은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감정에서 시작된다.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자존감의 근육’을 키워주는 일이다. 성적은 한 번 흔들려도 다시 올릴 수 있지만, 무너진 자존감은 오래가고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두 가지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 “책상에 앉는 힘”과 “인생을 즐기는 힘”이 그것이다.
공부도 해야 한다. 일각에서 “공부의 배신”을 말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노력 끝에 성공은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는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친구와 깔깔 웃어보고, 흙 묻은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녀 보고, 모래 더미에 손을 넣고 만져보고 멋지게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은 보기에도 좋고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그뿐이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소위 ‘멍 때리기’속에서도 창의력은 자란다.
어쩌면 최고의 교육은 “균형”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도 웃음을 잃었다면 반쪽 성공이다. 반대로 늘 행복해 보여도 자기 삶을 책임지는 힘이 없다면 그것 역시 아쉬운 성장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를 “관리”하려 하기보다 “관찰”하는 것이다. “왜 우리 아이는 집중을 못 하지?” 대신 “우리 아이는 언제 가장 반짝이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고가 쉽지 않다. 온통 우리 주변은 비교에 의한 상대적인 우월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조각가가 아니다. 정해진 모양으로 깎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을 발견해 주는 사람에 가깝다. 교육(敎育)이란 용어도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능력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즉, 인출(引出)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 과정에서 가끔은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 아이가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과자를 먹는 날도 필요하다. 인생은 원래 약간의 빈둥거림 속에서 버틸 힘이 생기니까 말이다.
언젠가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날 것이다. 그때 남는 것은 학원 이름이 아니라 기억이다. “엄마는 늘 내 편이었다.”, “아빠랑 웃었던 저녁이 좋았다.”, “엄마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줬다”는 것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기억이다. 아이는 결국 사랑받은 만큼 단단해진다. 그러니 오늘도 부모는 완벽한 교육법을 찾기보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바라보면 좋겠다.
현실로 돌아가 보자. 수학 문제집 한 권 덜 푼다고 인생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웃음은 한 번 놓치면,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는 무엇보다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공부는 바로 “좋은 부모 되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시험은 안타깝게도 족집게 학원이 없다. 우리의 현실에서 좋은 부모 되기가 결코 쉽지도 않다. 하지만 솔로몬의 지혜처럼 아이에 대해 몸과 마음에 상처가 없도록 대하는 진실한 사랑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가치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