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4 (목)

고마운 벌레에게

미국 앨라배마주의 엔터프라이즈라는 작은 마을에 가면 특별한 감사의 탑이 서 있다. 이런 일들 그러니까 탑이나 비석 따위로 무언가를 기리는 일들은 흔히 있는 것이나 이 마을에 있는 탑을 유독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 탑이 신이나 사람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벌레에게 감사하는 탑이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주는 미국의 남부에 있는 주이고 일찍부터 공업이 발달한 북부와 달리 남부는 목화를 비롯한 농업을 주로 하는 지역이었다. 그중에서도 앨라배마는 ‘Cotton State (면화의 고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목화를 많이 재배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훗날 노예해방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스토우 여사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배경이 바로 노예를 이용한 이 목화 산업이었다. 그래서 공업이 주가 되었던 북부는 노예 의존도가 낮았지만 남부는 노예 해방을 끝내 거부했던 이유도 이 목화 산업을 위한 노동력 때문이었다.

 

이 앤터프라이즈라는 마을도 목화를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이어서 목화 재배 때가 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일꾼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1895년 그 지역에 목화 벌레들이 창궐했고 목화 벌레들의 피해가 얼마나 컸던지 그 해 수확이 평년의 삼분의 일도 되지 못하였다. 그로 인하여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불경기가 밀어닥쳤다. 이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주로 이사를 가고 굶는 사람, 병든 사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때 주 정부와 농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랜 세월 재배해 오던 목화를 뽑아내고 땅콩을 심었다. 물론 오랜 세월 이어져 오던 목화 재배를 포기하고 새로운 작물인 땅콩 농사로 전환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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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학제품 옷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목화산업은 사양 산업이 되었다. 그때까지 목화에만 의존하고 있던 많은 주는 이 갑작스런 변화에 큰 충격에 삐졌다. 그러나 앨라배마주는 목화 벌레들 덕에 이미 세계적인 땅콩산지로 변해 있었고 결국은 목화 벌레로 인한 어려움이 오히려 큰 혜택을 준 셈이었다. 그 탑은 벌레가 이루어놓은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며 엔터프라이즈 주민들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웠다고 한다. “우리는 목화를 갉아먹던 벌레에게 깊이 감사한다. 이 벌레는 우리에게 번영의 계기가 되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다시 한 번 그대들에게 감사한다.”

 

운전을 하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만나기도 하고 다리를 다친 축구 선수가 사업가로 성공을 하기도 한다. 전설적인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는 어렸을 적 매우 궁벽한 시골에 살면서 사진사가 되기 위해 먼 도시에 있는 서점에 사진술에 관한 책을 주문했으나 몇 달 만에 도착한 책은 발성에 관한 책이었고 그 실수는 카루소를 위대한 성악가가 되게 했다. 존 번연이 영원한 스테디셀러 ‘천로역정’을 집필한 곳은 감옥이었다. 사마천은 궁형(거세를 시켜 생식능력을 없애버리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당했을 때 수도 없이 죽음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절치부심(切齒腐心) 살아남아 ‘사기(史記)’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아무도 번연을 죄수로 생각하거나 사마천을 치욕스런 사내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을 가두고 그들에게 좌절감을 안기려 했던 이들은 잊혔으나 위인들의 이름은 청사(靑史)에 고고(呱呱)하기만 하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신은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보내어 우리를 단련시킨다. 좋은 날만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사막이 된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신이 즐거움의 씨줄과 고난의 날줄로 우리 인생의 피륙을 짜고 있음을 상기하자. 이 고난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고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문양’을 갖게 될 것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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