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딸이라서 행복해
“엄마, 아빠 우리는 언제 여행가? 친구들은 다 외국으로 간다는데...”
연휴가 다가올 때면 자주 듣는 막내, 중학생 딸의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딸아이는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녁 밥상에 앉자마자 수저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대뜸 인스타그램 화면을 들이밀었습니다. 이 친구는 오사카에서 찍은 타코야키 사진, 저 친구는 방콕 수영장 셀카.
“봐봐, 모두 가는데, 나만 집에 있잖아.” 한 마디, 한 마디에 부러움이 묻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식사 내내 말이 없다가, 설거지를 하는 제 등 뒤에서 조용히 한 마디를 덧붙였죠. “나는 추억이 없어.” 그 말에 괜히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 투덜대는 딸을 위해 짧지만 1박 2일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 고속도로가 한산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저의 예상과는 달리 잠시 들른 휴게소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목적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아마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희 가족처럼 말이죠.
사실 인간은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경험을 갈망한다고 합니다. 낯선 공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 뇌는 새로운 냄새와 온도, 소리에 반응하고, 이러한 변화는 굳어 있던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며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기분을 환기시키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2025년 BMC Psychology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여가 여행의 빈도가 높을수록 심리적 웰빙 수준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딸의 투정이 단순한 떼쓰기가 아니라, 어쩌면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해야 할 일’들로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여러 가지 역할과 책임,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일들이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하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루의 할 일들을 떠올리고, 회사 일과 집안일, 챙겨야 할 사람들과 미뤄둔 일들 사이를 바쁘게 오갑니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생기고, 그런 하루가 무심히 지나갑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왠지 편치 않습니다. 소파에 잠시 기대어 있어도 ‘이렇게 있어도 되나’ 싶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어쩌면 우리는 쉬는 순간조차 스스로에게 허락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해야 할 일들에서 잠시 벗어나 저에게 많은 부분 허용을 하게 됩니다. 그게 비용적 측면이든 시간이든 말이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쓰는 일,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머릿속에 가득 안고 있던 해야 할 것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집니다. 늦잠을 자도 괜찮고 평소에는 아깝게 느껴졌던 시간과 비용도 여행지에서는 조금 너그러워지죠.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쩌면 여행은 단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잠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평소 나 자신에게 적용했던 엄격한 기준이 여행에서는 조금 느슨해집니다. 늘 생산적이어야 하고, 허투루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 그 느림이 저를 평온하게 만들죠. 어쩌면 이번 여행은 딸아이만 원했던 것이 아니라, 저 역시 누구보다 떠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아이가 행복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넵니다.
“엄마 아빠 딸이라서 행복해”
하룻밤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딸아이의 웃음과 그 한마디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짜 남기고 싶은 것은 외국의 어느 유명한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함께 웃고, 함께 머물렀던 시간들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따뜻한 추억을 품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