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월)

쫄딱 쫄딱? 그리고 학맞통

'도움 좀 주세요' 한 줄이 학맞통이었다.


 

함께 뿌리 내리고 함께 피어 오른다.

- 한 아이를 온전히 살리는 연합의 꽃-


▪ 그날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

 

예보에도 없던 비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열렸고, 서른 명의 아이들이 쫄딱 젖은 채 학교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머리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티셔츠는 몸에 달라붙고, 운동화는 걸음마다 소리를 냈습니다.

 

그 순간, 학교가 움직였습니다.

 

제일 먼저 수건을 내어 주신 분은 ***목사님이었습니다. 학교 행사 때 귀하게 쓰시려고 정갈하게 접어 보관해 두셨던 수건 한 아름을, 아이들 앞에 아낌없이 풀어 놓으셨습니다. 교무실에서 서류와 씨름하시던 ***선생님은 연락을 받자마자 일을 내려놓고 달려오셨습니다. 수건을 펴 아이의 머리를 감싸 문지르는 그 손길에, 교육 경력이라는 말보다 더 오래된 이력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서른 명입니다. 수건이 모자라고, 손이 모자라고, 옷이 모자랐습니다. 누군가 교직원 단톡방에 한 줄을 올렸습니다.

 

"도서관에 아이들 젖어 왔어요. 도움 좀 주세요."

 

이 카톡 한 줄에, 학교 전체가 일어섰습니다.

 

가장 먼저 행정실 직원들이 결재판을 덮고 복도를 달려왔습니다. ***영어팀장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은 자기 수업도, 자기 교무도 아닌 그 자리에 자발적으로 들어서셨습니다. 남자 아이들의 젖은 옷을 벗기고, 학교에 비치해 둔 예비옷을 꺼내 하나하나 갈아입혀 주셨습니다. 사이즈가 맞든 안 맞든, 마른 옷 한 벌이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실의 ***선생님. 과학실 구석에 놓여 있던 드라이기를 들고 달려오셨습니다. 평소엔 다른 용도였을 그 드라이기가,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교구(敎具)였습니다. 작은 머리들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따뜻한 바람으로 말리는 그 장면은 어느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은 '살아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도착하셨고, 또 한 분의 ***선생님이 합류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이름을 다 적지 못할 만큼 많은 교직원이 한 아이씩을 끌어안았습니다. 부서가 사라졌고, 직책이 사라졌고, 업무분장이 사라졌습니다. 도서관에는 오직 '젖은 아이'와 '말리는 어른'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단계가 가장 섬세했습니다. 젖은 옷을 비닐봉투에 하나하나 이름 적어 담아 가방에 넣어 집으로 보냈고, 학부모 밴드에 한 줄이 올라갔습니다.

 

"아이들 옷 다 갈아입혔고, 머리도 다 말렸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문장 하나에, 학교를 향한 부모님들의 불안이 녹아 사라졌습니다.

 

▪ 학맞통, 2026년에 오는 이름

 

2026년, 한국 교육에 중요한 이름 하나가 공식화됩니다.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이른바 학맞통입니다.

 

· 학생 한 명의 학습·정서·건강·가정·진로·학교생활을 통합 진단한다.

· 담임·상담교사·보건교사·행정·관리자가 한 팀으로 사례회의를 연다.

· 교육청은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하고, 2028년까지 초·중·고를 잇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다.

· "담임 혼자의 책임"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한다.

 

정책 세미나에 다녀오면 머릿속이 용어로 가득 찹니다. '사례관리', '통합 진단', '연계 기관', '디지털 연동'… 용어들이 철제 사물함처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습니다. 차갑습니다. 그리고 많은 현장 교사들이 "또 하나의 업무가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내옵니다.

 

그래서 저는 세미나 노트 위에 그날 도서관의 한 장면을 계속 포개어 놓습니다. 목사님의 수건, 닦아 주던 손, 예비옷을 입혀 주던 손, 과학실 드라이기, 달려온 행정실의 발, 비닐봉투에 담긴 젖은 옷, 그리고 밴드에 올라간 "걱정하지 마세요" 한 줄.

 

정부가 2026년부터 제도로 명문화하려는 그것을, 우리는 그날 이미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수많은 학교가, 자기 이름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저마다의 '비 오는 날'에 이미 학맞통을 살아왔습니다.

 

▪ 그날의 장면이 곧 학맞통의 설계도였습니다

 

학맞통이 말하는 여섯 영역이 그날 도서관 안에 모두 있었습니다.

 

· 건강을 돌본 손 —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 주신 선생님들. 젖은 몸이 감기로 번지지 않게 막은 일차 의료였습니다.

 

· 정서를 돌본 손 — 놀란 서른 명 앞에서 허둥대지 않고 웃어 주신 교감선생님, 수업도 아닌데 달려오신 영어팀장·체육 선생님. 아이들의 당황이 수치심으로 굳지 않도록 풀어 주었습니다.

 

· 가정을 돌본 손 — 젖은 옷을 비닐봉투에 이름 적어 담아 집으로 보낸 손, 그리고 밴드에 한 줄을 올려 학부모의 불안을 미리 끊어 준 손. 학맞통이 말하는 '가정 연계'의 교과서적 장면입니다.

 

· 학교생활을 돌본 손 — 카톡 한 줄에 결재판을 덮고 달려온 행정실 직원들. 행정과 교육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 학교의 모든 사람이 곧 교육자라는 사실의 증명이었습니다.

 

· 진로의 씨앗 — 그날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장면으로 배웠습니다. 책임을 나눠 지고, 필요할 때 즉시 움직이고, 내 일이 아닌 일에도 기꺼이 손을 내미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평생 진로의 가장 깊은 뿌리입니다.

 

· 학습의 영역만은 그날 도서관에 직접 펼쳐지지 않았지만, 서른 명의 아이들은 어떤 교과서에도 없는 가장 큰 한 교시를 배웠습니다.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수건과 드라이기로 배웠습니다.

 

이 여섯 가닥이 한 아이를 동시에 감쌀 때, 학맞통은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날 도서관에서, 우리는 그 완성형을 이미 보았습니다.

 

▪ 전인교육, 오래된 미래

 

200여 년 전 스위스의 교육 철학자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참된 교육은 머리(Head)와 가슴(Heart)과 손(Hand)을 함께 기르는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한 아이를 지식으로만 대할 수 없고, 감정으로만 대할 수 없고, 기술로만 대할 수도 없습니다. 세 가닥이 한 사람 안에서 엮여야 비로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 오래된 가르침이 2026년 대한민국 교육에서 '학맞통'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용어는 바뀌었지만 철학은 동일합니다. 한 아이를 통째로 보라는 것. 그 통째의 아이를, 학교 전체가 함께 감싸라는 것.

 

그날 단톡방에 올린 "도움 좀 주세요" 한 줄은, 사실 200년 묵은 페스탈로치의 문장이 카톡 알림음을 빌려 다시 울린 소리였습니다.

 

▪ 그날 아이들 가슴에 남은 기억

 

교육학은 오랜 관찰을 통해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가르친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한다.

 

그날 서른 명의 아이들은 그 도서관의 공기를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과학 선생님 손에 들려 있던 드라이기의 따뜻한 바람, 자기 담임이 아닌 선생님이 건넨 마른 옷, 행정실 직원이 복도를 달려오던 발소리, 비닐봉투에 꼼꼼히 적힌 자기 이름 세 글자. 이 기억들은 어떤 교과서보다도 깊이, 그 아이들 정서 회복력(emotional resilience)의 뼈대가 되어 앞으로 평생을 지탱할 것입니다.

 

발달심리학이 오래 증명해 온 것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나는 돌봄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한 장면을 가슴에 품고 자라면, 그 아이는 인생의 어떤 비 오는 날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학맞통의 진짜 최종 목적은 행정 통합이나 디지털 플랫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아이의 가슴 안쪽에 '학교가 나를 지켜 주었다'는 한 장면을 새겨 주는 것입니다.

 

▪ "모든 아이는, 모든 어른의 아이"

 

저는 학교 경영을 하며 한 문장을 점점 더 또렷하게 품게 되었습니다.

 

"학교 안의 모든 아이는, 모든 어른의 아이다."

 

담임반이 아니어도, 자기 과목 수업이 없어도, 그저 한 복도에서 같이 걷는 순간 그 아이는 '내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날 도서관의 어른들은 말없이 그 문장을 증명했습니다. 영어팀장에게 그 남자아이는 영어 성적표 속 한 명이 아니라 지금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과학 선생님에게 그 아이는 과학 진도와 무관하게 머리를 말려 주어야 할 한 사람이었습니다.

 

학맞통의 제도적 핵심은 "학교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이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그 앞에 반드시 놓여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위의 한 문장입니다. 이 문장이 없는 학맞통은 양식(樣式)만 남은 빈 껍질이고, 이 문장이 있는 곳에서는 법령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구조가 작동합니다.

 

▪ 우리의 다음 걸음

 

학맞통은 이제 제도로 들어옵니다. 회의 구조를 바꾸고, 위원회를 통합하고, 사례관리 문서 양식을 정비하고,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 실무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서류 위에 한 장면을 올려두고 시작합시다.

 

목사님이 안고 온 수건 한 아름, 교무실에서 달려오신 선생님의 닦아주는 손, 영어팀장과 체육 선생님의 갈아입히는 손, 과학실 드라이기의 따뜻한 바람, 교감선생님의 웃음, 행정실의 달리는 발, 비닐봉투에 이름 적혀 담긴 젖은 옷, 그리고 밴드에 올라간 "걱정하지 마세요" 한 줄.

 

이 장면이 저희 학교의 학맞통 헌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든 재현될 수 있는 헌법입니다. 거창한 장비도, 막대한 예산도, 복잡한 시스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학교 안의 모든 어른이 "이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는 한 문장을 공유할 때, 수건 몇 장과 드라이기 한 대, 단톡방 한 줄만으로도 학맞통은 완성됩니다.

 

2026년, 우리가 맞이할 학맞통의 성공과 실패는 예산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디지털 플랫폼의 성능으로도 결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우리가 '그날의 도서관'을 얼마나 자주 재현할 수 있는가로 결정될 것입니다.

 

한 아이를 통째로 품는 학교. 모든 어른이 모든 아이의 어른이 되는 학교.

 

이 오래된 이상(理想)이 학맞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 앞에 왔습니다.

 

그 이상의 가장 구체적인 이름은,

그날 누군가 단톡방에 올린

 

"도움 좀 주세요" 한 줄,

 

그리고 그 한 줄에 결재판을 덮고 교실을 나서고 복도를 달린 모든 발걸음이었습니다.

 

 

 

칼럼니스트 박대훈

 

• 현) 태강삼육초등학교 교장
•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 광운대학교 대학원 석사(초등영어교육)
• 전국삼육초연합회 회장
• 한국사립초연합회·서울사립초연합회 부회장
• 서울시·충청북도 수업연구 발표대회 1등급
• 충북 단재연수원 1급 정교사 연수 특강 강사
• 학교법인 삼육학원 전국 예비교사·중고등부·어린이교사 수양회 초청 강의 다수 출강
• ‘어린이 수업 집중법’ ‘부부행복세미나’‘섬기는 교육행정’강의 다수 출강

• 2026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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