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9 (화)

『빛과 열』

한 사내가 있었다. 믿었던 자인에게 사기를 당하여 회사는 부도가 나고 가정은 깨졌다. 실의에 빠져 세상을 비관하며 술로 세월을 달래다 노숙자가 되었다. 허기를 달랠 길이 없어 골목어귀에 있는 허름한 국밥집을 들어섰다. 물론 수중에 돈 한 푼 있을 리 없었다. 식당은 족히 팔순은 돼 보이는 할머니가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일단 국밥 한 그릇을 주문한 다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웠다.

 

배가 어느 정도 불러 오자 위기를 벗어날 일이 슬슬 걱정이 되었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던 끝에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할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문을 열고 도망을 했다. 도망을 하면서도 “거기 서! 이 도둑놈아!” 하는 외침이 돌팔매처럼 날아올 것 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 나온 할머니의 고함이 들렸다. “뛰지마! 그러다 넘어져!” 의외의 외침에 사내는 모퉁이를 돌아 담벼락 밑에 쭈그려 앉아 많이 울었다. 그리고 재기를 했다. 비록 국밥 한 그릇이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용서가 한 사람을 일으켰다.

 

경기도에 있는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학생 생활지도를 담당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없는 선생이 생활지도 선생인데 그러는 가운데도 멀리서도 나만 보면 달려와 폴더 인사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골치 거리였고 내가 담임을 맡은 적도 없는 아이었다. 그런데 한 사건을 계기로 그 아이는 내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고 고분고분 했다.

 

학교는 미션스쿨이었고 채플을 비롯해 강당에서 행하는 행사가 많았다. 생활지도 교사에게 그 시간은 전쟁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행사에 집중하는 대신 자기들만의 사업(?)에 몰두했다. 어느 해에는 스티커 사진, 어느 해에는 다이어리, 어느 해에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의 폴더폰이 붐을 일으켰다. 학교 행사는 아랑곳없이 자기들끼리 들여다보고 낄낄거리며 희희낙락했다. 하는 수 없이 배낭을 메고 아이들 사이를 돌며 행사를 방해하는 아이들의 휴대폰을 30여 개씩 압수를 했다. 그리고 방과 후에 찾으러 오면 한 참씩 잔소리를 하고 돌려주곤 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 날도 휴대폰을 20여개나 빼앗았고 벌로 월요일에 찾으러 오도록 했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고 압류품을 확인하는데 한 개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꽤 고가품이었다. ’뭐가 잘못되었지? 찾을 만한 곳은 모두 찾아보았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드디어 한 사람씩 반성문을 제출하고 휴대폰을 찾아갔다. 문제의 휴대폰 차례였다. 아이는 태연히 반성문을 제출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휴대폰을 달라는 무언의 신호임을 모르겠는가.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일단 자리에 앉게 하는데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했다. “사실은 엄마 폰인데 주말에 쓸 수 없게 돼 무척 혼났습니다.”

 

상황은 더욱 꼬인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도 표정이려니와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었다. “얘야, 사실은 휴대폰이 없어졌거든.... 경찰에 신고를 하고 주말에 통화기록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 혹시 단서가 있을지 모르니....” 그러자 아이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엄마한테 혼날까봐 몰래 교무실에 와서 훔쳐갔다는 것이다. 안도와 함께 화가 났다. 징계 감이었다. 그러나 징계위에 넘기지는 않고 오래 타일러서 보냈다. 그 후로 아이는 나만 마주치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벌꿀로는 파리를 잡을 수 있지만 식초로는 잡을 수 없다. 문구용 칼로 종이는 자를 수 있지만 장작을 팰 수는 없다. 장작을 빠개는 것은 도끼날의 예리함이라기보다 그 무게이다.’ ‘촛불은 빛과 열로 이루어져 있다. 빛은 어둠을 밝게 하지만 종이를 태우는 것은 열이다.’ 수많은 격언들을 떠올리며 그날 나는 다시 각성을 했다.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교사의 예리한 지성이 아니라 따뜻한 감화력이다.’ 돌멩이도 오래 품고 있으면 따뜻해진단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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