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가르쳐준 철학 -걷기 전에 뛰려 했던 나-
어느새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서 나의 시선은 책상 위 달력에 잠시 멈춰진다. 이제 남겨진 두 장의 달력,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그동안의 기록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지나간 일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한 해를 돌아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란 늘 아쉬움 투성이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이 작심 삼 일로 끝날 때마다 여린 내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하다. 마치 개학은 다가오는데 밀린 숙제가 남아 있는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못하는 이유에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없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까?’ 조용히 반문해 본다.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기 싫은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변명’에 불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 이유인 것 같다.
아직 부족한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 못 하는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 그런 나의 모습이 보인다. 무엇이든지 처음엔 서툴러서 그것이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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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숙제가 있으면 마음에 무거운 그늘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선택해보자 !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회피만 할 것인지, 아니면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낼 것인지.
아기가 태어나서 혼자 걷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뒤집기, 혼자 서기, 걷기 등 단계 단계마다 넘어져 울기도 하며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러한 반복적인 연습 후에 아기는 마침내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런 아기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를 바라본다. 이제 걸음마를 겨우 시작했는데, 뛰는 사람을 보며 어리석은 욕심을 부린 건 아닌지...
그리고 오늘 다시 결심한다.
숙제는 개학 전에 하는 것으로,
아기가 가르쳐준 삶의 기술, 다시금 떠올려본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일, 혼자 서기 전에 걷는 일을 생각하지 않고, 걷기 전에 다른 일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라도 몰입할 때 작은 열매는 맺기 시작할 것이다.
아기는 처음부터 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삶의 순리대로 시간에 몸을 편하게 맡길 뿐이다. 나 역시 주어진 시간의 구간대에서 최선을 다하면, 걷고 뛰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올 것이라 믿는다.
아직 남아 있는 두 장의 달력, 연초에 하고 싶었던 일이 여전히 바램으로 남아 있다면 미처 풀지 못한 숙제를 나와 함께 해보는 건 어떨지 묻고 싶다. 마지막 남은 달력을 넘길 때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내년을 시작할 수 있게 말이다.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