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내리는 명절 아침, 글쓰기에 대한 단상
올해 추석 연휴는 다른 해보다 무척 길다. 예전 같았으면 음식 준비와 손님맞이로 분주했을 시간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보낸다. 차례 대신 성묘로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생긴 아침 시간의 여유로움은 혼자 사색하는 시간마저 선물한다.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 자주 찾던 카페에 앉아 창밖 비 내리는 풍경을 넌지시 바라본다.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을 바라보며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얹고 마음에 떨어진 글을 한 톨 한 톨 줍듯 써 내려간다.
글쓰기, 나를 만나는 시간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작년의 겨울이 마무리 되어갈 즈음, 안부를 가끔 전하던 작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사는 게 때론 힘들지요, 그럴 때 어떻게 내려놓으시고, 받아들이시나요?”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금방 답할 수 없었던 그 날의 나를 기억한다. 작가님의 친절한 목소리에는 어떠한 무게감도 실려 있진 않았지만, 수화기를 올려놓으며 내 마음 안에서는 어느새 작은 울림이 들려오고 있었다.
‘나, 글을 한 번 써 보는 게 어떨까?’
사실 그랬다. 어느새 오십, 나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책 읽는 것에 진심이었던 나였기에, 그분의 제안은 마음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3년 전, 어느 커뮤니티 온라인 특강에서 우연히 그의 강의를 듣고, 이후 진행되었던 단과반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신뢰는 나의 결을 이해하고 잘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글쓰기를 시작하도록 도와주었다.
어느덧 8개월째 접어드는 소중한 글쓰기 수업, 솔직히 말해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서둘러 출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작가로서, 그리고 강사로서의 생활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분홍빛으로 그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활동으로 생겨날 수입까지 생각하면 그 당시 마음은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조급함보다는 글을 쓰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지만, 하루를 보내며 마음속에서 미처 태우지 못했던 찌꺼기들을 글로써 흘려보낼 수 있음을 알기에 나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이렇게 글을 배우며 스스로 내적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선의 전환
글쓰기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 예전에 나의 시선은 종종 외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에 유독 예민했고, 그들의 기대에 나를 맞추려 애쓴 시간이 많았다. 그런 내가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되었고, 반복되는 질문들 속에서 답을 찾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자기 자신은 누구보다 자기를 잘 알고 있다고. 그러나 그것은 정말 착각일 수 있다.
심리학의 '조하리의 창' 이론은 자기 인식과 대인관계를 네 가지 영역으로 설명한다.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 영역(Open Area), 나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아는 영역(Blind Area),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영역(Hidden Area), 그리고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는 영역(Unknown Area).
글쓰기는 이 네 가지 창 중에서도 특히 'Open Area'를 넓혀가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보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과정에서, 나조차 몰랐던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기회를 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는 것 같다.
창밖에는 여전히 가을비가 내린다. 낙엽은 하나둘 땅으로 떨어지고, 나는 이 고요한 명절 아침에 또 한 편의 글을 완성해간다. 글쓰기는 그렇게 나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