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 칼럼 - 모기와 가시덤불

  • 등록 2025.09.23 12: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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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 한 여학생이 교무실에 들렀는데 팔과 다리가 온통 흉터투성이어서 흡사 표범을 연상케 했다. 놀란 내가 눈이 휘둥그레 물으니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다가 모기에 물려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니, 너희 집의 모기는 이빨이 있어서 살점을 뜯어 놓는 모양이로 구나!” “아니죠. 모기는 피만 빨았는데 가려워서 긁어 상처가 났지요.” “그럼 이 상처는 모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만든 것이로구나!”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노라니 문득 지난 날 낭패를 당했던 때가 생각났다. 무심코 양복 차림으로 수풀에 들어갔다가 가시덤불에 걸려 옷이 엉망이 되었던 적이 있다. 같이 간 일행은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 문제가 없었으나 나는 정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온통 실오라기들이 뽑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그 옷은 교감 취임을 한다고 큰 맘 먹고 장만한 옷이었다. 속은 상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지라 ‘그나마 니트 소재를 안 입었기에 망정이다.’ 하고 말았다.

 

가시덤불은 거기 있었고 두 사람이 그곳을 지났으나 하나는 말짱하고 하나는 상처투성이라면 이는 가시덤불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는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이 문제였던 것이다. 모기가 문제가 아니고 거기에 대처하는 사람이 문제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날 나는 옷을 망치기는 했으나 평소 의문이었던 성경 한 대목이 풀리는 보상을 받았다. 그곳은 마가복음 마지막 장의 한 대목이다. 마가복음 16장 18절에 '믿는 자는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람이 무엇 하러 독을 마시겠으며 실수로 그것을 마셔도 죽지 않으리라는 것인가? 이 구절을 놓고 무신론자인 친구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미신이라느니 황당무계 하다느니 공격을 하는 친구에게 여러 말로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항상 이 구절을 생각하면 목에 무엇이 걸린 듯 개운치가 않았었다. 그러다가 바야흐로 그 구절을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3:8) 성경은 인간의 혀를 독이라고 하며 그 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사람의 혀와 입술이 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즉, 인간의 혀는 독이고 인간관계는 가시덤불이라고 할 때 우리가 사는 동안 그곳을 지나야만 하고 가시덤불을 지날 때 가시들은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가시 돋친 말들을 들어야하고 즉, 독을 마셔야만 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이는 심상(尋常)하게 여기고 지나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가지고도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친다. 이유는 그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 인데 마치 가시덤불을 자날 때 작업복을 입었느냐 니트를 입었느냐에 따라 손상의 정도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잘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말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기에 반응을 하는 데서 상처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이라는 옷을 걸치고 있으면 어떠한 독한 말도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리라.

 

‘중상(中傷)이란 귀찮은 벌 떼와 같은 것이다. 쓸어버릴 자신이 없으면 가만 놓아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 있다. 야외에 나갔을 때 벌이 한 마리 주위를 맴돌며 성가시게 한다, 쫓아버릴 요량으로 수건이나 옷을 휘두르면 자칫 두 마리가 되고 세 마리, 네 마리가 되는 수도 있다. 그리하여 급기야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 뇌두면 두어 바퀴 맴돌다가 제풀에 날아간다.

어느 가을날 교무실 책상 위 물병에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던지 노린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가만 두었으면 조용히 이동을 했을 텐데 발칙한 미물을 쫓아버릴 생각으로 종이를 둘둘 말아 두들겨 쫓아버렸다. 그러나 그가 떠나면서 남기고 간 고약한 냄새 때문에 물병을 씻어야만 했다. 그러고도 찝찝함은 남았다. 모기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고 과잉 대응이 항상 문제이다. “뱉어서 시원한 말일수록 참아야 한다. 내일이면 주워 담아야 할지도 모르니”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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