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커피의 산미 – 취향의 경계를 넘어보다
“여러분은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세요?”
커피 향기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마다의 ‘호(好)’와 ‘불호(不好)’를 잠시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향미를 평가하는 방법을 배우는 센서리 수업.
나는 불호에서 호가 된 케냐 커피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색함이란 이름에서 친근함이란 느낌에 매력까지. 그렇게 스며든 나만의 ‘케냐 이야기’를 조심스레 시작해본다.
커피의 향미를 알기 전, 처음 만났던 그의 맛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강한 신맛이 뜨거운 커피의 온기와 함께 입안에 전해지는 순간, 한 모금을 삼키기도 쉽지 않았다. 뱉어낼 수도, 삼켜버릴 수도 없는 난감하고 낯선 첫 만남에 애먼 커피잔만 바라보며 다시 마셔야 할지 망설였던 기억. 아무리 커피를 잘 아는 사장님의 추천 커피라지만, 케냐 커피는 ‘불호(不好)’ 그 자체였다. 커피 한 잔을 다 비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던 첫 만남의 기억.
케냐 커피의 강한 산미는 생두 감별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해발 1,500~2,100m의 고지대에서 재배되기에 당분과 유기산의 함량이 놓고, 밝고 복합적인 산미가 만들어진다. 케냐 커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SL28과 SL34 품종은 1930년대 케냐의 스콧 농업연구소(Scott Agricultural Laboratories, SL)에서 케냐의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도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량이 안정적인 품종을 찾기 위해 선별, 교배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품종이다.
그 중 SL34는 켄트(Kent) 계열에서 선별된 품종으로, 고도가 높고 비가 많이 오는 환경에서 재배가 잘 되는 특성을 가진 품종이다. SL28에 비해 산미가 조금 더 부드럽고 둥글며, 단맛과 바디(질감)이 더 묵직하고 무게감이 있다. 현재 케냐의 대부분의 커피 농가에서는 이 두 품종을 함께 재배해 산미와 단맛, 쌉쌀함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 케냐만의 독특한 커피를 만들어내고 있다.
케냐의 화산토양, 고도, 기후 조건에서 맞춰 개발된 품종을 워시드 프로세싱을 통해 깨끗하고 선명한 산미가 강조되도록 하기에 케냐 커피는 강한 산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생두 감별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가 되었던 케냐 커피의 산미. 처음엔 불호였던 케냐 커피가 매력이 있는 좋은 커피로 인정되기까지 그 중심엔 여전히 산미가 있었다. 커피의 산미는 시큼함이 아니다. 좋은 산미는 과일을 연상하게 하고, 커피를 생동감 있게 만든다.
처음엔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산미, 불호였던 산미의 결들이, 커피를 배우고 나니 각각 그 안에는 자연의 이야기, 가공과정의 이야기가 잔 속에 펼쳐진 맛의 일부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의 문이 열리니, 취향의 경계도 조금씩 유연해졌다.
이제는 케냐 커피를 앞에 두고 망설이지 않는다.
산미에 대한 오해(誤解)가 이해(理解)로 바뀌는 과정을 지나, 불호였던 커피가 어느새 ‘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하다 여겼던 산미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케냐 커피만의 독특한 매력임을 알기에, 오늘도 그 강하고 깨끗하며 깊은 산미를 천천히 음미해 본다.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강해서 ‘불호’일 수 있는 케냐 커피.
하지만 이 글이 누군가의 ‘불호’에서 ‘호’로 넘어가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취향의 경계가 유연해지는 순간, 케냐 커피의 산미는 더 이상 낯섦이 아닌, 새로운 생동감과 매력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이런 변화가 천천히 시작되길 바라며 케냐 커피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